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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쓰는 장갑도 우리한테만 아껴쓰라 하죠 학생들에게 친절 베풀며 계속 일하는 게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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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쓰는 장갑도 우리한테만 아껴쓰라 하죠 학생들에게 친절 베풀며 계속 일하는 게 새해 소망

입력
2013.01.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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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男 기아차 하청근로자

차량운반 같은 일 해도 임금은 정규직의 60%

30대女 다산콜센터 상담원

공무원 대신 욕먹는 느낌… 정규직화 공약 굳게 믿어

50대男 홍익대 경비원

욕하는 현장 관리자에 술·담배 사며 계약 연장

이들은 10년 넘게 일하고도 회사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조금밖에 못 받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도 계속된다. 노동자라도 다 같지 않다.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정부는 각종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하청ㆍ용역ㆍ위탁업체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법적으로는 하청업체의 정규직이어서 최소한의 보호막조차 없다. 갈수록 교묘하게 악용되는 '간접 고용'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민 1,048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 5년 동안 무엇이 바뀌어야 더 행복해질까'를 물은 한국일보 신년 설문조사에서도 4명 중 1명(24.1%ㆍ복수응답)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꼽았다. 한국일보가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통해 간절한 소망을 들어본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으러 조금 빨리 가는 것도 막습니다. 똑같이 쓰는 장갑도 우리한테만 아껴쓰라고 하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상대적 박탈감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달 27일 한국일보가 만난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양경수(37)씨, 홍익대 경비원 이희석(57ㆍ가명)씨, 서울시 행정민원서비스 콜센터인 다산콜센터 심명숙(37)씨는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정규직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면서도 용역 또는 위탁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각종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임금부터 턱없이 적다.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양씨는 2011년 기본급에 잔업ㆍ야간수당 상여금 등을 모두 더해 월 190만원(세후) 정도 받았다. 성과급까지 합한 연봉은 약 3,800만원(세전) 정도. 잔업수당 등을 챙겨 다른 비정규직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시급으로 따지면 5,200원,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비정규직은 내수차, 기아차 정규직은 수출차를 운반한다는 것 외에 업무 차이가 없는데도 임금은 정규직의 60%밖에 받지 못한다.

24시간 격일제 경비를 서는 이씨는 식대를 포함해 월 129만원을 받는다. 4년 전까진 월 85만원을 받았는데 노동조합이 생겨 나아진 것이다. 가족 생활비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동료들은 오히려 임금 인상을 반대한다. "경비원 월급 많이 주면 젊은 사람들이 몰려 나이든 사람이 밀려날까" 우려해서다.

다산콜센터에서 주말 2일과 평일 3일을 일하는 심씨는 서울시 공무원인줄 아는 시민들로부터 "내가 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느냐"는 하소연부터 "버스 타기가 불편하다"는 분노와 욕설까지 듣는다. 그는 주말 수당 25만원에 평가등급이 잘 나오면 월 170만원 정도를 받는다. 심씨는 "공무원을 대신 해 '욕받이'를 한다고 느낄 만큼 감정노동이 심하기 때문에 월 200만원 정도는 돼야 적당하다"고 말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다. 이씨는 "근무 중 잠시 졸거나 TV, 신문이라도 볼라치면 학교에서 직접 고용한 정규직 경비원들이 몰래 촬영해 용역업체에 알려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면서도 "용역업체 계약을 새로 하는 12월이면 욕설 등을 하며 모멸감을 주는 현장 관리자들에게도 술 담배 등을 사다 바치며 계약 연장에 목을 맨다"고 말했다. 양씨는 "자동차 산업 경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며 "경기가 어려워지면 비정규직이 방패막이 될 것이라는 일상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이들이 보기에 기업들이 하청이나 용역 등을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은 경기변동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무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양씨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기아차가 잔업을 없애 생산량을 줄인 것처럼 제조업은 인원이 아닌 작업시간으로 생산량을 조정하는 구조"라며 "노무관리를 편하게 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간업체에 주는 관리비나 이윤을 계산하면 정규직화하는 것이 오히려 예산이 절감된다고 한다"며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기고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간접고용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새해를 맞아 이들이 기원하는 소망은 한결같이 정규직 전환이다. 불법파견 소송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소송결과와 사측의 정규직 전환 의지에 따라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양씨는 "기아차가 글로벌 기업답게 정규직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망을 밝혔다. 이씨는 "남은 여생 학교에서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배려와 친절을 베풀며 근무를 잘 하고 싶다"며 "학교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용역업체만 믿지 말고 10년 가까이 일한 경비원들을 믿고 직접 고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씨는 정부 책임자들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박원순 시장은 올해 민간위탁 실태를 조사한 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공공부문 상시ㆍ지속 업무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정규직화한다고 약속했어요. 이 약속들을 꼭 지켜주세요."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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