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남기선(29)씨는 요즘 주머니에 노란 고무줄을 한 움큼씩 챙겨 다니고 있다. 다름 아닌 출퇴근길의 빙판 미끄럼 방지용이다. 남씨는 "주변 사람들이 신발에 고무줄 여러 개를 칭칭 감고 다니면 안 미끄러진다고 해서 사용 중"이라며 "사람들이 가끔 쳐다봐서 부끄럽긴 하지만 한번도 넘어진 적이 없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30년째 구두 수선업을 하는 한영순(73)씨에게는 최근 들어 신발 밑창 수선 주문이 부쩍 늘었다. 그는 "미끄럼 방지 밑창은 여름철 빗길 대비용으로 한달에 한 두명 정도 찾곤 했는데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리더니 일주일에 2명 이상씩 온다"며 "손님 중에 한번 미끄러진 사람은 꼭 밑창을 덧대러 찾아올 만큼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고무줄, 헌 양말, 미끄럼 방지 밑창, 휴대용 아이젠, 팔(八)자 걸음. 남들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는 실용주의부터 차량용 장비를 신발에 사용하는 용도변경까지, 빙판길 낙상 사고를 방지를 위한 아이디어들은 다양하다. 주기적으로 내린 눈이 유례 없는 한파에 녹지 않고 빙판을 이루자 시민들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대응법을 공유하며 자구책에 나섰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미끄럼 방지 소품 중 하나는 헌 양말이다. 아이디 'tsu***'는 자신의 블로그에 "집에 있는 헌 양말을 신발에 덧신거나 길게 잘라 신발에 묶으면 안 미끄러진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양말을 덧신는 게 모양새는 좀 안 좋아 보여도 넘어지지 않기 위해 패션 정도는 버려도 되지 않겠냐"며 강력 추천했다.
등산용 아이젠을 개조한 도시형 아이젠이나 스티커형 미끄럼 방지 패드처럼 일반 운동화나 구두에 장착이 가능한 아이디어 상품도 인기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눈이 자주 내린 후 도시형 아이젠이 하루에 많게는 5개 이상씩 팔린다. 물량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량 타이어용 체인 스프레이나 욕실타일 미끄럼 방지재를 신발에 뿌리는 이들도 있다"며 "신발에 사용하는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그냥 사가는 분들이 하루에 한 두 명은 된다"고 덧붙였다.
돈이 들지 않는 보행법 제안도 빠지지 않는다. 늦은 밤 학교 비탈의 빙판길을 자주 다닌다는 대학원생 이모(31)씨는 "빙판길에선 팔을 쫙 펼치고 발끝에 힘을 준 채 엉덩이를 뒤로 빼는 '엉빼'자세로 걸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며 "가끔 넘어지더라도 엉덩이를 빼고 있어 크게 다칠 염려가 없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전국적으로 1월 하순까지 평년(영하6~영상3도)보다 추운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고 3일 예보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영하권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이면도로나 그늘진 곳에 쌓인 눈이 쉽게 녹지 않을 전망"이라며 "눈길과 빙판길 미끄럼 사고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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