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복(행운), 행복, 보람, 건승, 뜻하는 바 이루기…. 새해 인사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는 신년인사가 부쩍 늘었다. 반면 한때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는 뜸해지더니 아예 사라졌다. 너무 많이 쓰여 진부해졌거나 물질적 풍요만이 행복의 잣대일 수 없음을 자각한 결과라면 다행이다. 반면 서민이 부자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고, 애써 부를 조금 쌓아봐야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진 구체적 경험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에는 입안이 쓰다. 덕담으로 건넨 말이 조롱처럼 들려서는 안 될 일이니까.
물론 다수 국민이 부자가 되고 싶거나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든가 각자의 처지에 맞게 물질적 욕구를 조정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신 그런 간망(懇望)을 마음 속에 감추다 보니 현실과의 괴리만 커져서 좌절과 스트레스가 팽배해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최저 수준의 출산율에 비추어 무성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과소(寡少)를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행복'을 대선 구호로 내걸고, 첫 당선 소감으로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현실과 닿아있다. 그 결과 내달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새해맞이 분위기와 겹쳐 행복의 조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일보가 1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심층기획 '새 정부 5년, 국민 행복의 조건'이 좋은 예다. 이 연재기획의 기초인 지난 연말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사회 양극화 및 빈부격차 해소,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순으로 행복의 조건을 꼽았다. 상위 5개 조건 가운데 '안전한 사회'빼고는 모두 '상대적 박탈감 해소'로 압축할 수 있다. 실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이런 조건의 충족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넓고 깊게 이뤄졌다. '보편적-선택적' 복지 논쟁은 보편 쪽으로 기운 절충형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등 노동구조 개혁이 최상의 복지 정책이라는 사회적 합의도 어느 정도 틀이 짜였다. 재벌의 지배구조에 칼을 깊이 대어야 하는지의 논란은 진행형이지만, 대기업이 성장의 과실(果實)을 독차지하는 구조는 깨야 한다는 합의도 모양이 잡혔다. 새 정부가 이런 과제의 해결에 매달려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런 주문을 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켕긴다. 행복의 조건을 갖추기가 말처럼 쉽지 않거니와 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행복이 사회경제적 조건의 충족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사회의 구석진 곳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등 따시고 배부르고', '흰 쌀밥에 쇠고기 국'을 먹을 수 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듯, 소득 순도 아니다. 국제적 행복지수(GNH) 비교조사에서 상위권은 으레 저개발국이 휩쓴다. 경제수준을 이유로 이런 '행복한 국민'을 되레 생각이 없거나 모자란다고 깔보는 사람이 많다. 그런 눈길과 인식이야말로 '국민 불행'의 씨앗이다.
돈 말고도 행복의 요소는 숱하다. 공동체적 가치와 질서, 사랑과 우정, 교양과 문화, 육체적 단련과 모험, 지적 호기심 충족 등등 끝이 없다. 먹고 살만 해지면 유럽 선진국처럼 그런 가치 지향이 살아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기고도 변함이 없다.
춥고 배고픈 사람은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보편적 복지라면 누수비용이 없어 그리 큰 돈 들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도 부분적으로는 조세형평이나 소득 재분배 등으로 풀어볼 수 있다. 그러나 닭고기 먹으며 돼지고기 먹는 사람 부러워하고, 돼지고기 먹으며 쇠고기 먹는 사람 부러워하는 국민을 진정 행복하게 할 만한 수준에는 이르기 어렵다. '국민 행복'이 벌써부터 아득해 보이는 이유다. '행복해 보세' 운동이라도 펼쳐 가치 지향을 분산하고, 국민인식의 획기적 전환을 이룰 준비를 하는 게 급선무일 듯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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