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법질서ㆍ사회안전 분과를 설치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해온 법질서 확립, 민생치안 대책, 검찰개혁,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다룰 예정이라 한다. 인수위원장의 취임 일성도 "법의 지배"였다. 자신이 평생 법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상식적으로 보아 법질서와 법의 지배는 인권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전문에서부터 '법의 지배'를 강조한다. 법과 직접 관련된 조항도 여러 개 있다. 법인격의 인정, 법 앞의 평등, 기본권 침해시 법의 구제를 받을 권리, 자의적인 체포ㆍ구금 금지, 공정한 재판권리, 무죄추정 권리와 소급처벌 금지 등 고전적 인권에 속하는 거의 모든 조항이 법과 관련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법의 지배와 법질서를 강조하는 정부는 논리적으로 인권친화적 정부라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뉘앙스다. 새 정부가 법질서를 강조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인권존중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공권력을 앞세워 팍팍하게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법질서와 사회안전을 붙여놓은 데서도 그런 어감이 느껴진다. 사회안전을 예전엔 공안이라 하지 않았던가. 왜 법을 강조하는데 듣는 사람은 찬바람부터 느끼는 것일까. 당선인이 인권을 직접 언급했던 경우는 드물다. 야당에게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비난한 적이 있고, 강력 성범죄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을 정도다. 이런 발언을 뒤집어 보면 당선인의 인권관을 유추할 수 있다. '억울하게 당하지 않을 권리', '가해자를 철저히 응징할 권리' 같은 것이다. 얼핏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일차원적인 응보논리여서 보통사람들의 법 감정에 호소하는 바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인권원칙에 비추어 보면 이런 입장은 문제가 많다. 원래 인권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공적 담론으로 발전한 것이다.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주체는 개인이지만, 인권을 보장할 의무는 궁극적으로 국가에 있다. 국가가 인권을 보장할 의무에는 세 차원이 있다. 첫째, '존중'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시민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국가의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 원래 여기에서 법의 지배 사상이 나왔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의무다. 둘째, '보호'할 의무가 있다. 국가는 시민들이 어떤 국가기관 혹은 다른 개인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 셋째,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시민들의 의식주와 생활상의 기본욕구를 채워주어야 한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사회권에 가까운 내용이다.
당선인의 인권관을 위의 세 가지 원칙에 비춰 보면 어떻게 될까. 제일 기본인 '존중'할 의무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한 바가 없다. 아버지 때 벌어진 인권침해를 둘러싼 과거사 논쟁에서 구설수에 올랐던 걸 보면 국가의 인권존중 의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것 같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 '보호'의 의무는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감정적인 응보의 색채가 짙어서 인권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세 번째 '충족'시킬 의무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다. 선별적 복지가 현재까지 나와 있는 그림인데, 충족의 의무에서 도출되는 적극적 사회권의 색채는 옅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새 정부의 인권관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몇 가지 증거로 미뤄볼 때, 상당히 소극적이고 부분적인 국가의 의무에 기대고 있다. 국가가 시민들 권리를 적극적으로 '존중'하겠다는 시그널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국가가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도 감정적인 복수논리도 함께 강조한다. 시민들의 사회적 욕구 '충족'에 대해서도 아직 모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의 지배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바로 이 때문에 법질서를 강조하는 말이 인권 옹호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법질서를 외친다고 사회가 안전해지는 건 아니다. 국가가 시민들에 대한 인권의무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게 우선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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