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복판, 40대 남성들이 20대로 돌아가 가장 찾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첫사랑'(15%)? 아니면 연락이 끊긴 옛 친구들(11%), 혹은 풍성했던 머리숱(5%)….
한 남성복 회사가 40대 남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26%가 '꼭 이루고자 다짐했지만 미처 이루지 못한 꿈들'이라고 답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무모할 정도로 혈기왕성한 20대 시절. 가슴 절절이 품었던 꿈과 이상, 인생 목표는 시간이 흘러도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소중한 추억이자 인생 7막의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남는다.
'인생의 꽃'20대 청춘들이 요즘 많이 아파하고 있다. 계사년(癸巳年) 첫 새벽을 여는 태양을 바라보는 청춘의 가슴은 설레야 하지만, 이들의 표정에는 불안과 위기감을 넘어 분노로 차있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고 실업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연말 경남 창원시에서는 20대 청년 3명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 등 굵직한 뉴스들이 연말 분위기를 달구는 사이 이들의 잇따른 비보는 한파에 묻혀 세간의 관심 밖에 있었다. 크리스마스인 지난달 25일 밤 창원시 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문모(29)씨의 상의 호주머니에는 이력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대학 졸업후 다니던 한 대기업 하청업체를 그만둔 뒤 아르바이트를 하면 재취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자 좌절감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20일에는 대학 4년생 조모(28)씨가, 13일에는 김모(28)씨가 각각 아파트와 주차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도 최근까지 구직난에 허덕여 왔던 것으로 경찰조사 드러났다.
저마다 사연이 다르겠지만 공교롭게도 20대 청년 자살 사건이 잇따라 창원시에서 발생한 것은 지역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 1970~80년대 수출자유지역으로 명성을 날린 마산에서는 '잘 살아 보세'의 기치 아래 크고 작은 제조업체들이 젊은 노동인력을 대거 흡수했다. 당시 마산의 2차 산업 비중은 33%에 달했다. 하지만 창원시와 통합한 2008년 마산의 2차 산업 비중은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신 자영업 등 3차 산업 비중이 80%나 됐다. 경남도 내 생산가능인구 대비 청년층 비중은 21.6%로, 이들의 고용률은 36.7%에 불과하다. 3명중 한 명만 일자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 곳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희망이 없다'고. 몇 년째 구직을 못해 취업을 포기한 청년들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미취업 상태가 장기화하며 심리적으로 주눅들고, 사람도 만날 수 없게 된다. 일단 취업부터 하자며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 불일치'로 조기 퇴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취업 실패의 좌절감에서 벗어나려고 어설프게 자영업으로 뛰어들어 파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기는 어려워지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청년 실업→청년 자영업 창업→청년 파산'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더 이상 청년 개인의 자질 부족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청년문제를 심화시키는 사회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개선해 이들에게 긍정의 힘과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이 박 당선인이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청년층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지 않은가. 청년실업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상황에서 한시적이라도 정부나 공공기관의 의무고용할당제 실시가 필요하다. 청년 고용 증진을 위해 기업들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기업과 학교가 노동력의 숙련도와 적성을 고려한 매칭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도 시급하다. 일자리가 부족한 지역 중소도시에 지역 맞춤형 고용창출 특별지원 대책도 절실하다. 세밑 청년 실업 한파가 울리는 경고음에 귀 기울이고, 20대 청춘들에게 희망을 되돌려줄 구체적인 일자리 창출 로드맵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장학만 사회부 차장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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