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첫손 꼽은 것은 사회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였다. 우리 사회 최대 고민을 해결하려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약자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듣고, 강자에게는 공동체 의식을 복구시키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부자들이 "나에게 세금을 더 거둬라"고 집단 탄원서를 내고, 미국 억만장자 워렌 버핏이 부자증세를 주장하듯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증세를 주장하는 고소득층을 만나봤다. 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은 '워킹 푸어(근로빈곤층)'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잃은 저소득층의 현재를 들어봤다.
"감세로 인해 지난 5년간 세수가 90조원이나 줄었습니다. 지금이라도 30%대인 개인 최고 소득세율을 60%까지 올려 부(富)를 적절히 재분배해야 합니다."
류시문(65) 한맥도시개발 회장은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의 해법으로 증세를 제시했다. 류 회장은 건축물 안전진단 전문 중소기업의 회장으로 개인 자산 규모가 상위 10% 수준의 부유층이다. 개인소득세율이 오르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사람이다.
하지만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는 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 결국 사회전체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류 회장은 "수출 위주의 국내 산업구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경쟁구조, 부유층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관행 속에서 상위층은 계속 부를 늘려가는 반면 하위층은 빈곤만 대물림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증세를 통한 복지 확충으로 빈곤층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비과세 감면, 예산절감 및 세출구조조정, 복지 행정 개혁 등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도 "현재 양극화 정도가 너무 심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빈곤층의 삶에 밖에서의 작은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경북 예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류 회장은 어릴 적 사고와 병으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고 귀도 들리지 않는 이중 장애를 얻었다. "장애 때문에 취직도 못할 테니 농사나 짓자"는 아버지를 설득해 어렵게 고교를 졸업하고 신문배달, 점포 점원 등으로 일해 신학대에 진학했다. 이 곳에서 은사인 이여진 신연식 교수 부부를 만났다. 류 회장을 딱하게 여긴 부부는 등록금도 대 주고 류 회장이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예금을 헐어 사업밑천까지 대줬다. 류 회장은 "농촌에서 고립돼 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만 교수님들 덕분에 가난과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 지금까지 장애인 빈곤계층 등에 기부한 돈만 어림잡아 30여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부유층이 시혜를 베풀 듯 기부를 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로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내가 잘 나서 사업이 성공했고 부자가 됐다'는 생각이 강해 공공의 가치에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지난 5년간 감세 혜택과 함께 고환율 저금리 환경 속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도 일자리 창출과 투자에는 인색하지 않았습니까? 산업화 시대에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기업을 일으켰고요. 그동안 수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이제 '사회통합세'라는 생각으로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빈곤층의 삶이 안정돼야 우리 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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