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직장인의 별'로 불리는 임원 승진에 성공한 대기업 초임 상무 A씨. 1억원이 채 안되던 그의 연봉은 1억5,000만원가량으로 껑충 뛰었다. 직장인의 꿈인 이른바 '억대 연봉자' 대열에 합류했지만, 소득세 35%를 원천 징수하면 실 수령액은 월 800만원을 약간 웃돈다. 홑벌이라서 대출 원리금, 생활비, 자녀교육비 등을 쓰면 저축할 돈이 별로 남지 않는다.
# B씨는 전업 주식투자자다. 수십 억 원을 굴리는 이른바 '큰손 개미'다. 장이 좋지 않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데도 매달 A씨 월급 이상은 벌어들인다. 그래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주식양도차익이 발생해도 소액주주에겐 과세하지 않는 현행 법 때문이다.
# 미술품 수집가 C씨는 12년 전 1,000만원을 주고 서양화 1점을 구입했다. 최근 그림 가치는 7,000만원. 그간 미술품을 사고 팔아 얻은 소득에 대해선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지만, 2013년부터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C씨가 내년에 그림을 팔면 양도차익 6,000만원 가운데 90%(5,400만원)를 공제받고, 나머지 금액(600만원)의 20%인 120만원만 내면 된다. 최대 38%까지 소득세가 부과되는 월급쟁이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민주화가 화두였던 올해 조세제도의 불공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됐다. 하지만 고소득층과 대기업,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늘려 조세 형평성을 실현하자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성과가 따라주진 못했다.
논의가 무성했던 파생상품거래세 신설과 대기업 연구개발(R&D) 세액공제 개선도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끝나가는 분위기다. 4월 총선 때만 해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경쟁적으로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한국거래소가 위치한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해 방향을 선회하더니, 최근엔 선물거래에 0.001%, 옵션거래에 0.01%의 거래세를 부과하려던 방안을 아예 폐기하기로 했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연구기획본부장은 "지난해 파생상품 거래액이 무려 1경원을 넘었는데도 과세가 전혀 안 되고 있다"며 "파생상품은 차익을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워 거래세라도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R&D 세액공제도 마찬가지.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3년 조세지출예산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8부터 5년간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와 R&D 세액공제 혜택의 90% 이상은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달 24일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원회에서 여야는 ▦대기업 R&D 세액공제 축소 ▦대기업 법인세율 인상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ㆍ과세표준 조정 등을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28일 회의에서 여야는 이 부분은 제외한 세법개정안을 처리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현행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추고, 고소득 근로자 연말정산 공제총액을 제한하는 등 일부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조세 형평성을 위해선 비과세ㆍ감면 혜택 축소보다 고소득층 소득세율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등과 같은 직접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현행 소득세 과세표준에 따르면 연봉 4억원을 받는 사람과 40억인 사람의 소득세율은 38%로 동일하다"며 "세율 구간을 세분화하고, 슈퍼리치(연 소득 30억원 이상)에겐 소득세율을 40~45%까지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슈퍼리치에게 부과하는 유럽의 평균 소득세율은 40~50%. 프랑스는 75%에 달한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주식으로 수십 억원을 벌어도 대주주만 아니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현실은 불합리하다"며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원칙에도 어긋나는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도 "주식과 미술품 거래는 부유층에게 세금을 회피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며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공평과세 원칙에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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