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뒷산과 널따란 운동장을 가진 전남 보성군 벌교읍 낙성리 낙성초등학교의 운동장 한 켠에는 고구마 밭이 있다. 학부모들이 정부의 ‘작은 학교 통폐합’ 정책에 맞서 학교를 지킬 장학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으로 일구는 공간이다.
낙성초교는 현재 학생수가 34명인 소규모 학교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통폐합 유도 대상이다. 강제는 아니지만 학부모들이 동의하면 학교가 폐쇄된다. 정부는 작은 학교를 흡수한 큰 학교에 초교의 경우 30억원, 중ㆍ고교는 100억원의 재정 지원을 내세워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다.
평온했던 낙성초교 인근의 시골마을은 지난해 말 교육청의 ‘작은 학교 통폐합 설문’ 공문이 내려오면서 술렁였다. 8년 전 귀농한 학부모 대표 최혁봉(41)씨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려고 내려왔는데, 폐교가 되면 마을도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이 드신 어른들을 중심으로 ‘큰 학교에서 배우는 게 좋지’라며 정부 정책에 설득당하는 분위기였지만, 젊은 학부모들이 뭉쳐서 학교를 살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학교 살리기 아이디어가 바로 고구마 밭이다. 학교 측이 지난 3월 운동장 6,700m2( 2,027평) 중 1 ,600m2(484평)를 떼어 줬고, 학부모 중 한 명이 자신의 땅 2,000m2 (605평)를 추가로 내놓았다. 학부모들은 이 밭에서 지난 10월 말 첫 고구마 수확을 했고, 약 500만원의 수익을 남겼다. 낙성초교에서 수확한 고구마는 쇼핑몰을 통해 판매됐으며, 이런 사연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학부모 모임은 이 돈으로 내년 낙성초교 병설 유치원 신입생에게 1인당 30만원의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올해 8명인 유치원생이 내년에는 2명으로 줄어들 예정인데, 병설 유치원생이 5명 이상 유지 돼야 보성교육지원청으로부터 유치원생과 초교생이 함께 탈 수 있는 통학버스를 계속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모임은 나머지 수익금도 학생 유입과 학교프로그램 개발 등을 위해 쓸 예정이다.
학교도 학부모들의 노력에 발맞춰 올해 방과후 활동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그 결과 올해 전남교육청 학교평가에서 교육과정ㆍ교육경영ㆍ교육성과 등에서 모두 우수등급을 받았고, 보성교육지원청의 영재선발 시험에서 3명이 합격하는 성과도 거뒀다.
최씨는 “학교 폐교는 학교뿐 아니라 시골마을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진다”며 “말로만 농촌을 살린다고 하면서 폐교 유도정책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교육당국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김옥양 학교장도 “학교 오는 것이 행복하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재정지원 같은 환경 탓만 할 수는 없었다”며 “학교가 작다고 해서 배움의 노력까지 작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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