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올해도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턴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1위(31.2명, 2010년), 노인빈곤율 1위(45.1%, 2011년),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률(11.3명, 2011년) 1위 등 우리 사회를 묘사하는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들에 익숙해져 버렸다. 언론보도를 자주 접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우리 모두가 미리부터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소위 '묻지마 살인'이나 아동성폭력 등의 사회안전 저해범죄는 물론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청소년 가출, 무분별한 고소, 인터넷 악플, 도박‧인터넷‧마약 중독 등 각종 사회병리 현상이 범람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면서 미래학자인 영국의 데니스 가보르(Dennis Gabor)는 저서 (The Mature Society)에서 성숙사회를 "높은 수준의 물질문명과 공존하면서도 정신적인 풍요와 생활의 질적 향상을 최우선시 하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로 정의하였다. 선진국이란 결국 성숙사회란 의미로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아직까지 성숙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300조원으로 OECD 국가 중 4위를 차지햇다. 지난해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2008년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의 약 16.2%인 158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제는 고속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감과 문제해결에 대한 국민적 의지를 다져야 할 때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선 각종 사회병리 현상에 대한 단편적이고 대증적인 수단이 아니라 사회병리 현상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가 2011년부터 올해까지 2년간 범부처적으로 '건강한 사회 만들기' 대책을 추진해 오고 있지만 화합과 신뢰의 증진, 배려와 나눔의 문화 정착 등을 위한 사회문화적 접근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는, 사회병리 현상이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사회불안은 다시 사회병리 현상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해야 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한 노력은 사회병리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나 처벌보다는 사회적 배제나 차별의 해소,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해 사회적 소외자들을 우리 사회의 주류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셋째로는, 이러한 노력에는 정부 뿐 아니라 언론, 시민단체, 일반 국민 모두의 참여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다. 얼마 전까지의 소위 '묻지마' 범죄와 아동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새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없다. 언론, 시민단체 등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건전한 사회문화 조성을 위한 범국민적 운동을 생활화 하고, 이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지역사회 자원을 발굴하여 조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자생적인 면역기능과 치유능력을 보유한 사회이다. 그러한 자생적 능력은 사회 구성원 상호간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과 올바른 정신문화적 가치 규범의 확립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상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보장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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