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방배동의 한 사회복지시설은 올해 9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청소년 휴(休)카페’를 열었다. 청소년 휴카페는 방과 후 갈곳 없는 청소년들이 모여 쉬면서, 문화 활동과 교류를 하는 청소년의 마을공동체다. 방배동 지역아동센터의 66평 남짓한 공간 일부를 빌려 운영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이 독서와 휴식을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서울시는 이 휴카페에 리모델링비와 운영비로 5,000만원을 지원했으나 이 돈으로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휴카페를 이용하는 청소년은 하루 평균 50여명, 일주일이면 300여명에 이른다.
# 서울 우면동의 국민임대주택단지에는 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다. 그래서 주민 10여명은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려고 준비 중이지만 역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벽에 부딪혔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수천만원까지 마련할 계획이지만 어린이집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 강남구 대치동 주민들은 동네 작은 도서관을 추진중이다. 공공도서관은 너무 멀어 학생들이 가기에 불편해 가까운 곳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민들의 사랑방처럼 만들 생각이다. 책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증을 통해 모을 수 있지만 책을 비치하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은 구하기가 쉽지 않아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들의 마을공동체 활동을 위한 모임인 강남-서초 마을넷의 김영란(48) 준비위원장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북카페, 부모커뮤니티, 동네 도서관, 예술창작소 등 마을공동체를 만들려는 욕구와 움직임은 많지만 안정적으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공동체는 마을 내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주민들이 소통, 교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경우 유휴공간이 드물고, 건물 등 공간의 임대료가 비싸, 수익을 내지 않는 마을공동체가 이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파출소 통폐합으로 사용하지 않는 방범초소,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임대되지 않은 공간 등 공공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 데 이 부분에 대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마을공동체사업의 중장기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서울의 718개 공공시설의 유휴공간을 개방해 마을공동체 활동 공간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나 일시적인 회의나 모임 정도가 가능할 뿐 북카페, 도서관, 쉼터 등 지속ㆍ안정적인 공간으로는 활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에서는 마을공동체 활동에 필요한 공간은 주민들이 알아서 마련하되 공간이 마련되면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공간”이라며 “사업비, 운영비 중심의 지원 방식 대신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을공동체에 공간을 제공하는 기업에겐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기업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도 있다”며 “일단 공간이 마련되면 주민들의 자원봉사, 기부 등으로 필요한 프로그램과 자원을 모으는 게 가능해 진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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