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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같던 결혼도 미래도 이젠 꿈꿀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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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같던 결혼도 미래도 이젠 꿈꿀 수 있죠"

입력
2012.12.2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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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비정규직으로 입사… 5월 무기계약직 전환월급 오르고 정년 보장"암담한 삶에 축복 내린 듯… 비정규직은 국가적 문제"

"암 투병했던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은행에선 정규직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결혼은 아예 포기한 상태입니다. 일본에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결혼 못하는 계층이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서울메트로 소속 지하철보안관 손성원(36)씨는 사회생활 10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비정규직 신분에 대해 "인생의 계획을 세운다는 게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손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을 즈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8살 터울 남동생이 대학에 합격하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무작정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태권도 사범. 9년 가량 일을 했지만 아르바이트였다 보니 무직이나 다름없었다. 손씨는 "간암으로 투병했던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시골 땅을 담보로 해 대출을 받았는데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높은 이자를 받더라.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이런 힘든 상황 때문에 헤어졌고, 이후 결혼 생각도 접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던 손씨는 올 3월 서울시 지하철보안관 2기로 서울메트로에 입사했다. 지하철보안관은 오세훈 전 시장 시절 지하철 성범죄 예방을 위해 도입돼 지하철 내 이동상인의 판매행위, 기부요청 행위 등 질서 저해행위를 계도 단속하고, 승객들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물론 비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손씨는 "일하면서 4대 보험 적용된 게 처음이었는데 '어 이런 게 있구나' 신기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5월엔 난생처음 정규직(무기계약직)이 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산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1,13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조치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용역회사 등을 통해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 6,231명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손씨는 정규직 전환에 대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비정규직에게 차등 적용되던 휴가, 복지포인트 등 혜택이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향상됐고, 급여도 올라갔다. 정년을 보장받는 점이 무엇보다 큰 변화다.

손씨는 "그 동안 아버지 병원비 등으로 진 빚 4,000만원에 대해 이자 갚는 것도 빠듯했지만 이제는 원금도 조금씩 갚고 있다. 대출도 정규직이 된 이후 은행에서 좋은 이율을 적용해줘 갈아탔다. 앞으로 3년 정도면 모두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비정규직 시절에는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젠 인생의 계획도 세울 만큼 앞이 보인다. 나도 결혼이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료 보안관들의 삶도 바뀌었다. 손씨는 "경제적 상황 때문에 아이를 포기했던 동료가 출산 계획을 세우고, 혼인신고도 못했던 동료가 정식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며 "모든 게 큰 축복"이라고 했다.

손씨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나처럼 개인의 삶이 바뀌고, 저출산 등 국가적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 전체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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