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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울지마" 1004명의 몰래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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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울지마" 1004명의 몰래산타

입력
2012.12.2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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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허름한 연립 주택 앞. "하나야~ 건희야~ 강희야~ 나와라~."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집 밖으로 나온 고하나(10) 건희(8) 강희(6) 남매는 말로만 듣던 산타를 직접 마주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날 하루 이들 남매의 일일 산타가 된 김병하(27)씨가 그동안 연습을 거듭한 '산타 발성'으로 "큰 누나 하나는 종이 접기를 잘 하고 건희는 블록 쌓기를 잘 하고 강희는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며 아는 체를 하자, 쭈뼛쭈뼛 서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이내 경계심이 사라졌다. "사이 좋게 한 해 동안 잘 지냈고 착한 일 많이 했다"며 산타가 자루에서 선물을 꺼내 들 때는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였다. 남매가 받은 선물은 각각 인형, 필통, 장난감 자동차. 한부모 가정인 이들 남매를 맡아 키우고 있는 할머니 이덕희(69)씨가 미리 산타에게 귀띔해 준 선물인 동시에 이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산타 데뷔를 무사히 치른 일일 산타 김씨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멘트를 이것저것 많이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들 앞에 서니까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며 어색해했다.

같은 시각, 신월동의 또 다른 집에서도 신나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박지민(6)군 앞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울면 안돼' '징글벨' 등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는 가운데 짧은 마술쇼가 이어졌다. 곧이어 산타에게 운동화를 선물 받은 박군이 새 신발을 신고 집 안을 뛰어 다녔다. 지체장애 1급으로 평소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와 밖에서 놀아주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던 박군 아버지의 얼굴에도 아들과 닮은 웃음이 번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과 24일, 서울 곳곳에서 산타 행렬이 이어졌다. 한국청소년재단 주최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캐롤과 마술 공연, 선물 증정 등의 크리스마스 깜짝 이벤트를 열어 주는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 행사 때문이다. 올해로 7년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서는 1,004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산타로 변신, 4~13세 아동 1,004명에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관, 학교 등의 추천을 받아 선정한 아이들이다.

자원봉사자이지만 산타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까다롭다. 행사 전까지 오리엔테이션과 이틀 간의 산타학교에 참여해 방문 예정 아동들의 성격, 칭찬·격려할 점을 공부해야 한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자원봉사자들이 각 1만 5,000원씩 낸 후원금으로 마련한 선물이다.

준비 과정이 긴 만큼 보람도 큰 법. 올해로 몰래산타 행사에 7년째 참가하고 있는 회사원 김예창(35)씨는 "'크리스마스에 술 먹고 노는 것보다 보람 있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사비를 털어 피자와 선물을 사고 있더라"며 "이제는 연례 행사처럼 됐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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