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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77> 전설로 남은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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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77> 전설로 남은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입력
2012.12.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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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사람들이 캐롤을 부르며 즐거워하는 크리스마스. 서로에게 축하를 보내던 이 시간에 만인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던 영국의 명배우 찰리 채플린이 스위스 로잔의 자택에서 88세를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1977년 12월 25일 새벽이었다.

흑백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 스타였던 그는 영화 역사상 대중들로부터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은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였다.

1889년 영국 런던 뮤직홀의 삼류 배우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채플린은 부모의 이혼과 생계 불안으로 누구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험난한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타고난 연기력이었다. 다섯 살 때 목을 다친 어머니 대신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열네 살 때 희극배우의 길로 들어선 후 연기력을 인정받아 카노 극단의 배우가 됐다.

1913년 채플린은 미국 순회 공연에서 코미디계의 대부인 키스톤 영화사의 맥 세네트의 눈에 띄었고 그 해 12월부터 활동 근거지를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 분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이듬해 개봉한 영화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경주'에서 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상의를 입고 나타났다. 우리가 익히 아는 지팡이에 작은 중절모,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큼지막한 구두를 신은 채플린의 방랑자 캐릭터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콧수염까지 붙이고 나니 그의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깊은 페이소스를 가져다 주었으며, 소외자의 삶이 갖는 비애와 유머를 동시에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이로부터 단 몇 년 만에 채플린은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최고 스타의 길을 걷게 된다. 퍼스트내셔널 영화사와'키드', '개의 삶', '어깨 총', '유한계급', '순례자' 등을 만들었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설립해 '파리의 여인'을 필두로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 라이트' 등을 선보였다. '키드'와 '시티 라이트'에서 따스한 인간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전체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1940년에는 히틀러를 풍자해 만든 '위대한 독재자'로 잘못된 시대의 흐름을 비판했다. 대표작인'모던 타임즈'를 통해서는 컨베이어 벨트에 얽매인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53년 매카시 열풍으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강제 추방된 그는 충격을 받아 중립국인 스위스로 이주했고 오랜 시절 미국땅을 밟지 못하다가 72년에야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무성 영화시대에 전 세계인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던 찰리 채플린은 77년 성탄절 새벽 그의 캐릭터처럼 허탈한 웃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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