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전 누가 대통령이 돼도 힘들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우리 사회의 당면 현안들이 어떤 방법으로도 풀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한 교수는 누가 돼도 6개월 만에 지지도가 반 토막 난다고 단언했다. 한참 의욕에 차 있을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악담에 가까운 예측이다. 그러나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는데 이를 충족시킬 방법은 크게 제한돼 있는 현실에서 비관주의자의 악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명박(MB) 대통령 취임 무렵 국정수행을 잘 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은 70%대에 달했다. 불과 3개월 뒤 국정수행 지지도는 20%를 밑돌았다. 인수위 잡음에 이어'고소영 강부자'논란에 휩싸인 조각 인사파문에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동까지 겹친 탓이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공신화'의 이 대통령에게 걸었던 높은 기대가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결과였다. 대선 때 높은 지지를 보냈던 자영업자와 20~30대 젊은층의 배신감이 특히 심했다.
MB의 실패를 목격한 박 당선인은 다를 것이다. 적어도 인수위 구성과 조각 과정에서 대탕평 인사를 통해 국민화합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박 당선인은 24일 당선 후 첫 대외 활동으로 서울 난곡동을 찾아가 독거노인 등에게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다. 후보 시절 내걸었던'민생 대통령'행보의 실천이다. 그러나 탕평인사나 민생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로 가장 핵심적인 문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청년 실업과 같은 일자리 문제, 10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자영업자 문제 등이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금방 나아질 수 없다. 내년 경제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경제성장율 3% 달성도 힘들다고 한다. 세계 경제도 여전히 침체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에 특별한 성장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박 당선인이 앞장서는'다시 한번 잘 살아 보세'가 탄력을 받기 어렵다. 국민들은 참을성이 없다. 형편이 바로 나아지지 않으면 새 대통령에게 불만과 비난을 쏟아낸다. 6개월 만의 지지도 반 토막이 현실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암담한 상황에서 북한과 북방은 우리에게 기회의 거의 유일한 땅이다. 성장동력, 일자리, 중소기업 활로, 내수시장 확대 등 우리 경제의 애로 요인들을 일거에 풀어갈 잠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MB는 현대건설 회장 시절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돌아보고 장차 한민족의 살길이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노라고 자서전 에 썼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북한에 발목을 잡혀 아무 것도 진척시키지 못했다. 퇴임 후 MB가 가장 뼈아프게 후회할 게 바로 그 일일 것이다.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핵심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다. 남북간 합의를 전향적으로 이행하고 인도적 지원과 경제교류를 늘려 남북간 신뢰를 회복한 뒤 비핵화가 진척되면 북한 인프라 확충 등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대로만 된다면 '다시 한번 잘 살아 보세'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김정은 체제다. 손뼉을 마주쳐줘야만 가능한 일인데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핵실험을 포함해서 앞으로 도발과 위협 사태가 일어날지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박 당선인이 북에 손을 내밀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한이 먼저 변화하기만 바라고 있으면 이명박 정부의 5년과 달라질게 아무 것도 없다. 남북관계의 잃어버린 5년은 금방 10년이 될 것이다.
북한이 먼저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변할 상황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김정은 정권이 변화를 통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체제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끊임 없이 혼란스러운 신호만 보내 북한을 자극하고 도발의 빌미를 제공했다. 10년 전 생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박 당선인은 MB와는 다른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박 당선인에게도 기회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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