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지만 부양 의무가 있는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된 노인들이 목숨을 끊는 비극이 잇따르는 가운데,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제도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가 될 수 있으나, 부양 의무자(혈연 1촌 및 그 배우자)가 있거나 이들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일 경우에는 수급권자에서 제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초생활수급자는 155만명,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경우는 117만명으로 추산된다.
국회 경제사회정책포럼이 지난 21일 주최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지선 변호사는 부양의무제 규정이 헌법에 보장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34조)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34조) ▦평등권(10조) ▦포괄위임 금지 원칙(75조) 등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실제 생활은 빈곤층이지만 가족에 의한 사적 부양과 수급제도를 통한 공적 부양에서 모두 소외된 사각지대가 117만명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이 제도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부양능력 판단 기준을 약간 초과하는 중하위계층이 부양 의무를 지면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고, 소득역전 현상도 발생할 수 있어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하지만 기본권과 관련된 수급권자 판정 기준을 대통령령에 규정한 것도 헌법에 위배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기초생활보호제도는 공적 부양을 통해 사회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오히려 사회양극화를 발생시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 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제 부양 여부와 무관하게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수준을 넘으면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간주부양비'제도를 철폐하고, 생활이 곤란한 가구는 먼저 수급자로 선정한 뒤 후에 부양의무자로부터 이를 징수하는'선 보장 후 정산'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급 후 징수가 어렵다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 허 교수는 "부양비를 공권력으로도 받아내기 어렵다면, 수급권자가 이를 부양의무자로부터 받아내라는 식의 현행 제도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부양의무제의 즉각적인 폐지는 어렵다"며 "부양의무자 범위를 '혈연 1촌과 그 배우자'에서 '혈연 1촌'으로 축소하고, 부양의무자의 기준을 중위생활 수준으로 높이는 등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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