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한 것은 여성, 젊은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이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남성, 중년, 백인, 부자 등을 노골적으로 편든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기득권층과 사회적 강자의 대변자였다. 오바마를 뽑은 이들이 실제 얼마나 큰 차별과 어려움을 겪는지 서울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이들이 상대적 약자, 소수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당시 미국 언론도 이들을 '약자 동맹' '소수자 카르텔'로 불렀다.
19일 치러진 한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50대가 결정했다. 이들은 90%에 육박하는 높은 투표율로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들의 투표율은 젊은이에게도, 노년층에게도 그리고 50대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것이었다.
50대가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10위권 안팎의 경제력을 갖는데 이들은 큰 기여를 했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혼란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아직은 능력과 재주가 있다고 여기지만 일자리에서 계속 밀려난다. 스스로의 노후도 불안한데 자식들은 학교를 못마쳤거나 번듯한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의 이치를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됐건만 도리어 더 불안하고 더 고민스럽다. 그런 자신들을 몰라주는 이 사회도 서운하다. 그들이 투표소에 몰린 것은 이런 심경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50대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은 누구보다 많은 기회를 누렸다. 개인의 경제력도 이전 세대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 사회ㆍ경제 제도의 허점 속에서 적지 않은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50대의 일부는 현재 대한민국의 최정점에서 막강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은퇴 등의 이유로 삶의 방식이 바뀌어 불안하겠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오바마를 당선시킨 약자나 소수자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누군가의 존재가 도드라지면 또 누군가는 그 존재가 희미해진다. 약자 혹은 소수자가 아닌 세력이 유난히 큰 목소리를 내면 정작 약자 혹은 소수자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50대는 이미 5년 전 근거 없는 기대감에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몰아준 적이 있다. 이번에 다시 자신들의 파워를 과시한 이들 50대 베이비붐 세대는 인구구성상 앞으로도 한동안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50대의 힘을 확인한 정치권은 이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자원과 재원이 한정된 마당에 누군가에게 그것들이 집중되면 또 누군가는 그 혜택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엄청난 속도의 고령화 때문에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개혁이 불가피한데 지금의 50대가 두고두고 목소리를 높이면 그런 개혁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후세대가 더 많은 고통을 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어느 사회, 어느 시대나 특정 세대, 특정 집단이 우대받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50대가 우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도리어 사회의 역동성을 위해서는 젊은 층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60대 이상 노인층이 더 관심을 받아야 한다. 50대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젊은 층과 노인층을 위해 스스로의 욕구를 가라앉히는 노력도 해야 한다.
정치권이 이들의 뜨거운 참정 의식을 그저 자기 보신이나 사회 안정으로만 이해해서도 안된다. 50대는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교육받은 세대이기 때문에 사회정의나 개혁의 염원을 아직은 어느 정도 갖고 있다. 따라서 새로 출범할 정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소홀히 하거나 개혁을 등한시하면 50대 역시 난처해질 수 있다. 한국 대선에 앞서 실시된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에 압도적 승리를 안긴 일본의 유권자들이 뒤늦게 선거 결과에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남 이야기로만 여길 것은 아니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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