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1075~1151)이 를 지은 고려 중기만 해도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유교적 세계관이 우리나라에 본격 전파됐던 시기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였던 그가 선덕여왕을 혹평했던 배경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는 에서 "신라는 여자를 왕위에 있게 했으니 진실로 난세의 일이며,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고운기 한양대 교수 풀이). 하지만 편견을 접고 보면 선덕여왕은 성공적인 군주였음이 분명하다.
■ 여왕은 26대 진평왕의 둘째 딸로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부왕이 아들 없이 승하하자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됐다. 부왕은 첫째 사위인 용수(龍樹)에게 왕위를 잇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덕만이 자라면서 '용봉(龍鳳)의 자태와 천일(天日)의 위의(威儀)'를 드러내자 그를 택했다고 한다. 여왕의 지혜로움은 의 '선덕왕 지기삼사(知機三事)'를 통해 전해진다.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음을 보고 모란의 향기 없음을 알아챘다는 얘기 등이 실린 대목이다.
■ 여왕이 즉위한 632년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간 패권 대립이 격화하던 시기였다. 밖으론 새로 일어선 중국 당나라가 호시탐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 신라 내부적으론 전통적인 골품귀족의 세력을 견제하면서 중앙집권적 왕권을 강화해야 할 때였다. 여왕은 김춘추와 가야 출신인 김유신을 중용하면서 왕권을 견고히 했고, 당나라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장차 3국 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여성으로서 고독했으나, 신라에겐 융성의 분수령이 됐던 군주였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두고 누군가 "선덕여왕 이래 1,300여 년 만의 여성 지도자"라는 수사(修辭)를 붙였다. 애써 선덕여왕을 거론한 건 박 당선인의 성공과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으리라. 굳이 멀리 볼 것 없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도 어떤 남성 못지 않은 훌륭한 지도자로 꼽히고 있다. 박 당선인이 한반도 통일과 경제 발전, 국민통합의 과업을 훌륭히 이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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