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의 전주가 시작되자 어깨를 바짝 움츠린 교수들이 악보와 지휘자를 정신 없이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지휘자만 쳐다보고 있던 한 교수는 갑자기 손가락에 침을 묻혀 악보를 넘긴 후 큰 숨을 들이마셨다. “흰,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긴장감 때문인지 합창단 뒷줄 베이스 파트에서 엇박을 놓쳤다. 하지만 실수한 장본인의 멋쩍음은 이내 흥겨운 화음 속에 묻혔다.
21일 오후 서울대 관악 캠퍼스 미술관 강당에서는 서울대 교수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연주회가 열렸다. 100여명의 지역 주민과 학교 구성원들이 객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열린 이번 공연은 서울대교수 70여명이 연말연시를 앞두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서로 교감을 나누기 위해 특별히 마련됐다.
지휘자에서부터 단원까지 모든 구성원이 서울대 교수로 이뤄진 이 합창단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졸업식 공연을 선물하자며 뜻을 모은 10여명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2010년 10월 결성됐다. 지난해 2월 서울대 졸업식에서 아이돌 그룹 2AM의 ‘죽어도 못 보내’를 부르면서 화제가 된 교수 합창단은 현재 17개 단과대 70여명의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사랑과 기억’을 주제로 꾸며진 이번 공연에서 교수들은 크리스마스 캐럴은 물론 ‘광화문 연가’, ‘사랑의 서약’등 가요에서부터 팝송까지 대중들의 애창곡 9곡을 불렀다. 여기에 세계적인 테너 박현재 음대 교수를 비롯 재학생들의 호른 연주까지 곁들여지자 관객들은 환호하며 공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3년째 매주 수요일 오후 음대에 모여 맹연습을 해온 교수들이었지만 여전히 “강의는 쉬워도 무대는 너무 떨린다”고 입을 모았다. 공연이 끝난 후 지휘를 맡았던 김영률 음대 교수는 “실수도 많았지만 바쁜 일정에도 각자 시간을 쪼개 정성으로 일궈낸 공연인 만큼 대만족”이라며 “강단에선 그렇게 당당하던 분들도 무대에서는 어찌나 긴장하는지…”라며 웃었다. 유일한 외국인 단원인 라이몬 블랑카포르트 인문대 스폐인어과 교수는 “합창단에 참여 한 후 첫 공연인데다 한국어 가사 발음이 어려워 무척 떨렸다”며 “크리스마스를 맞아 합창을 통해 동료 교수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정감을 나눌 수 있었던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관악구 주민 김모(52)씨는“서울대 교수라면 왠지 권위적이고 딱딱할 것만 같았는데 소소한 실수도 하면서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고 공연 소감을 밝혔다. 경기 시흥시에서 온 이모(42)씨는 “지난6월 교수합창단의 시흥 공연에서 보여준 열정과 정성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찾아 왔는데 역시 즐겁고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말했다. 서울대 음대는 내년부터 마땅한 음악 교육기관이 없는 시흥지역의 음악 꿈나무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마다 그 지역을 찾아 음악 멘토링 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합창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정재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우리가 만든 화음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또 따뜻한 소통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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