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판사들의 쾌거'. 53회 한국출판문화상 심사결과의 특징은 한마디로 상을 받은 출판사들이 소규모 영세한 곳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출판사들은 참신한 기획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출판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독창적인 소재를 대중적으로 접근하고 미시사나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접근한 수작들도 눈에 띄었다.
본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은 예심에서 올라온 5개 분야 50권의 책을 미리 검토한 후 18일 한국일보 본사에 모여 4시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여 총 6종의 책을 골라냈다. 분야별로 후보 도서를 놓고 꼼꼼한 리뷰와 책의 장단점을 논의한 끝에 최종 수상작을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이 정한 기준과 방향은 ▦내용의 깊이와 함께 전체 출판문화에 기여할 만한 것, ▦사회 트렌드를 반영하고,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만한 책이었다.
이런 기준으로 책을 고른 결과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출판사들의 면면이었다. 그동안 수상작들은 대체로 인력과 자본이 풍부한 대형출판사들의 책들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의 출판사 '또하나의문화'는 여성주의 책을 주로 내 온 사실상 1인출판사이고, 의 '남해의 봄날'은 이름 그대로 소도시 남해에서 서너 명이 운영하는 지방출판사였다. 또한 를 낸 '뿌리와이파리'는 10년 간 100여권의 책을 내며 입소문으로 알려진 곳이었으며, 의 '책읽는곰'도 출판 경력 4년의 작은 출판사다. 이는 출판 위기 속에서도 실력있는 편집자들의 저변이 넓어졌으며 소규모 출판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책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은 좋은 책을 출간하기 위해 분투하는 작지만 매운 힘에 희망을 건다고 축하를 보냈다.
저술 학술 부문은 , , , , 등 무게 있는 저작들이 경합했다. 심사위원들 간에 긴 토론이 이어졌으나 결국 고른 지지를 얻은 가 최종 선택됐다. 심사위원들은 "한국 사회에서 현재 진행형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소박하고 진실된 기록을 제대로 가지고 있었는가"(김경집), "관념적인 부분에 머물던 사회학을 현장 연구로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에 가산점을 줘야 한다"(김석희)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은 역사적 건축물과 도산의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했고 무엇보다 흥미롭게 기술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교양 부문에서는 소금이라는 사물을 매개로 중세후반과 근현대사를 보는 통시성을 지닌 이 선정됐다. 저자가 발품을 팔며 꼼꼼하게 조사하고, 고대중국의 소금과 철에 대한 정책을 논의한 염철론 등 학술적 내용까지 담은 점이 높이 평가됐다. 김경집 심사위원은 "본인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지녔다"고 말했다. 도 어려운 물리학의 개념들을 간결하고 일목요연하게 풀어 써서 눈길을 끌었다.
편집 부문은 남해의 봄날의 와 안그라픽스의 이 팽팽히 경합했다. 두 책의 특장과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라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는 내용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쉽지만 아기자기한 편집의 묘미와 기획의도를 잘 살린 책으로 편집상이 갖고 있는 의미에 부합한다는 평(김석희, 김경집, 한기호)이었다. 반면 은 우리 문화 전체에 기여하는 연구업적이라는 점에서 탁월하다는 평(김우창, 김서정)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장시간 토의했으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공동 수상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외에 현암사의 과 삼인의 등도 관심있게 검토됐다. 심사위원들은 편집자와 더불어 특히 두 책 저자들의 노력과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어린이ㆍ청소년 부문에서는 우리 작가들이 만든 그림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만큼 역량이 성숙했다는 감탄이 이어졌다. 특히 백희나씨의 에 대해서는 투박하지만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판타지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통쾌함이 돋보이며(김서정), 리얼리티가 확실하면서도 판타지를 가미했다(한기호)는 호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특히 그동안 작가가 구축해 온 것들을 평가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상을 준다며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탄생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번역 부문은 시리즈가 계속 번역 될 를 놓고 심사 기준에 관한 논의부터 해야 했다. 산스크리트어를 우리말로 옮긴 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은 세계적인 고전을 완역하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경의를 표할 정도(한기호)라 역자의 공째?집념을 높이 평가(김우창)하나 최종 평가는 완역된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는 공역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3년 간 정기적으로 모여 역할 배분을 하고 작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일관성 있고 매끄러운 책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좋은 사례로 기록됐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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