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를 타개하는 것이 여전히 꿈이던 1964년, 우리 경제는 수출 1억달러의 성과를 냈다. 이를 기념하여 수출의 날까지 제정했다. 약 50년이 지난 올해 우리 경제는 무역액 1조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원으로 이제 개도국 개발지원에 나서며 세계 500대 기업 중 10여개를 키워낸 우리 경제의 저력은 온 세계가 강남스타일을 노래하는 저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역의 급성장은 우리 경제에 아직 큰 숙제를 남겨놓고 있다. 우선 제조업의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에서 우리의 수출은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수출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중국이나 후발 개발도상국들이 우리와 유사한 방식의 수출주도형 산업육성정책으로 추격을 가속화하면서 주력 수출산업에 국제경쟁이 가중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수출의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시키는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어 중장기적인 수출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우리 산업계에게는 해결방안이 절박한 과제이다. 더욱이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데다 원화의 평가절상 기조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우리의 수출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져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과의 국제경쟁에서 도태하는 일본 제조업의 침체현상은 우리 산업계에게는 주목할 반면교사이다.
국내적으로는 무역확대의 경제적 혜택이 수출경쟁력을 확보한 소수의 주력산업에만 집중되면서 전후방산업에 포진한 중소기업들 육성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FTA로 인한 지속적인 국내시장 개방의 확대는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저가 수입공세로 인한 고사의 우려만 키우고 있다. 이러한 무역의 양극화 현상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감소와 맞물려 내수경기 진작을 통한 경제체질 강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시장개방의 파고와 개방경제체제로의 구조조정과제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한중, 한중일 FTA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인도와 아세안(ASEAN) 10개국을 아우르는 포괄적 지역경제협력협정이 추진되는 한편 미국의 주도로 아시아 태평양 11개국은 환태평양경제협력협정을 추진하면서 세력다툼을 하는 기세다.
개방경제체제로 나아가는 시대적 추세를 역행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 경제는 국경없는 시장을 수용하고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국내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제기되는 각종 서비스규제를 개선하고 무역조정지원제도를 활성화해 시장을 통해 산업경쟁력이 육성되는 경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전면적인 시장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반덤핑관세와 같은 무역구제제도를 운용하는 무역위원회의 보강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볼 때 반덤핑관세의 피해를 가장 많이 겪다 보니 무역구제조치의 사용을 가급적 자제해왔다. 더욱이 2000년에는 중국산 깐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조치를 부과했다가 호된 무역보복에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어 더욱 무역구제조치를 경원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같이 본격적인 시장개방으로 국내산업이 수입경쟁에 노출되면 불가피하게 무역구제조치의 사용이 늘게 된다. 더욱이 농업과 중소기업 등 국내산업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낼 중국 및 일본과의 FTA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최후의 방책이 될 무역위원회 보완은 향후 통상정책의 최우선적 과제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무역위원회를 지식경제부 산하에서 독립시켜 판정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 상임위원을 대폭 확대해 책임성 있는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현재 이원화된 관련 법체계를 정비하고 로스쿨 도입으로 확대된 법조 인력을 대폭 충원, 무역위원회 판정의 법적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 시장개방을 통한 21세기형 개국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역사에 유례없는 무역대국으로의 성장을 즈음하여 지난 세월 무수히 겪어온 쇄국으로의 회귀와 이로 인한 희생에 대한 교훈을 되새기자.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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