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헌에는 지금보다 훨씬 풍부한 색명이 등장합니다. 그 색은 과연 어떤 색일까. 그 색들을 전통색이라 이름하고 139가지 색 이름과 실제 색깔, 그 색을 지닌 실물 사진을 함께 제시했습니다."(안그라픽스 문지숙 편집주간)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부문 공동수상작인 (안그라픽스 발행)은 색깔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잠재력을 재발견한 성과와 편집디자인ㆍ인쇄ㆍ제본에 들인 노력이 높이 평가 받았다. 편집 부문에서 영예를 안았지만 학술적인 가치를 높이 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의 전통색을 소개한 비슷한 이름의 책들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전통색을 체계화한 거의 유일한 자료인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전통표준색명 및 색상에 관한 연구'가 제시한 90가지 색깔을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은 이 같은 작업을 참고하면서도 독자적인 색채 추출 작업을 시도했다. 조선 중ㆍ후기를 중심으로 25종의 고문헌을 참고해 139가지 색채를 골라내고 색명 마다 추출 프로그램을 통해 9가지 색깔을 선정했다. 전통문화전문가, 색채전문가들의 자문과 검증을 통해 그 중 하나의 대표색을 정하고, 색이 재료와 관찰조건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 나는 점을 고려해 색채의 허용 범위를 두어 8개의 연관색을 함께 제시했다.
옛 문헌에 등장하는 색 이름은 지금은 쓰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추출한 색을 전통색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적색 계열에서 적색과 자색의 중간쯤인 강색(絳色), 청색 계열에서 노란빛의 녹색인 단청색(蛋靑色) 같은 경우다. 이 숫자가 전체 색깔의 절반에 가깝다. 색 이름은 그것이 문헌에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를 밝히고 그것이 어떤 색깔인지를 다른 색깔과 관계나 사물의 빛깔로 설명했다.
색채 연구가인 저자 문은배(49)씨가 이 작업을 구상했던 것은 그가 색채 연구를 시작한 17년 전부터이지만 실제 색 추출과 사진 작업은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집중 완성했다. "밥에 피는 곰팡이의 색깔(미색ㆍ黴色)을 촬영하려고 3주간 밥을 삭히는"(민구홍 편집자) 등 지난한 사진 작업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편집디자인의 주축이 되어 역량을 발휘한 사람이 황리링(26)이라는 재중동포라는 점도 이채롭다. 홍익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시각디자인을 배우며 안그라픽스를 세운 안상수 전 교수 등과 인연을 갖게 된 그는 출판사 편집팀의 지원을 받아가며 표지, 본문 디자인과 장정을 도맡았다.
황씨는 "책의 타이포그래피에서 한국의 단아한 문화가 섞여 나오도록 한다거나 병기해야 하는 한자를 1, 2㎜ 차이로 작게 넣는 부분에 신경을 썼다"며 "색채를 다룬 책이니만큼 색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본문 텍스트와 아예 페이지를 달리해 편집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도 편집자도 힘들었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인쇄 교정"이다. 색채 추출프로그램을 통해 고른 색깔들의 미세한 차이를 종이 인쇄로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대한 원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보통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인쇄 교정을 3번 봤다. 책 안에서 작업과정을 설명하는 부분과 실제 색채를 보여주는 내용에는 재질이 다른 종이를 썼다. 황씨는 "이 과정에서 인쇄회사 장인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 책은 장정에도 숨은 매력이 있다. 겉표지를 벗기고 옆에서 보면 실로 기운 제본이 드러나도록 한 '누드 양장'의 책등은 책 내용과 어울리게 오방정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다. 색채를 설명하는 본문에도 적, 청 등 주요 색채 카테고리가 시작하는 페이지 안쪽에 세로로 길게 그 색깔을 입혔다.
문 주간은 "독일, 중국의 대형 북페어에서 외국책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슨 책을 세계에 내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번 작업 이후로도 안그라픽스는 아름다운 우리 책 만들기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은배씨는 "과 의궤, 같은 공식 기록에 모든 물품의 정확한 공식 색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의 색채는 현대를 능가할 정도로 정교했다"며 "전통색이 가치 있는 분야로 자리잡고 젊은이들이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심사평'한국의 전통색' 전통색 일목요연 정리한 노고에 경의를'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시의성·적절한 사진배치가 눈에 띄는 편집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심사위원들은 585종의 한약재 효능과 특징을 소개한 과 우리의 전통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을 펴낸 저자들의 노력에 경의부터 표했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저자들의 각고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책에 사용된 이미지는 다의성을 바탕으로 글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지가 저자, 편집자, 디자이너의 의도에 맞게 종이라는 '장(場·그라운드)'에 제대로 '닻 내리기'(정박)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요즘 책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편집자의 과도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독기만 내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몇 년간 편집 부문 수상작은 주로 이미지의 장식적 한계를 극복한 책에 주어졌었다.
그러나 올해는 글과 이미지가 상보적으로 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편집이 돋보이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랜 논의 끝에 편집과 제작에 안정감을 보인 과 기획의 시의성이 돋보이고 적절한 사진쓰기와 편집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 의 공동 수상을 결정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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