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배구조를 강제로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건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어떤 점에선 야권 후보보다 훨씬 더 강한 압박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20일 박근혜정부 출범에 대해 이처럼 한편으론 안도, 다른 한편으론 긴장의 속내를 드러냈다.
사실 선거전까지 '박근혜=친기업, 문재인=반기업'의 고정관념이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로 재계는 내심 박근혜후보 쪽으로 쏠려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후보와 달리 박근혜 후보는 재벌그룹의 기존 순환출자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재벌그룹들로선 박근혜정부 출범을 계기로, 종래의 환상형 순환출자를 강제로 끊는다거나 출자총액제한을 받는 상황은 피하게 됐다. 경영권방어나 승계부담도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이 점에선 확실히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준화가 '용두사미'나 '솜방망이'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들의 약탈적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다거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 외에 감사원 중소기업청 등으로까지 확대한다거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는 등 박근혜정부의 공약 중엔 상당히 위력적인 내용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순환출자금지는 몇몇 재벌그룹만의 문제이고 기본적으로 오너의 문제이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모든 대기업에 다 적용되는 경영과 이익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런 부분을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대기업들로선 지배구조개혁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새 정부에 대한 '투자와 일자리 선물'에도 고심하고 있다. 워낙 경기가 침체되어 있고 또 새 정부도 출범한 만큼, 대기업들로선 대규모 투자와 고용계획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경기도 어려운데 투자와 고용을 무작정 늘리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색하게 하자니 새 정부로부터 밉보일 수도 있는 터라 '선물의 양과 질'에 크게 고심하고 있다.
한 재계관계자는 "박 당선인이 기존순환출자 강제해소에 반대하면서 그런 경영권 방어비용을 차라리 투자와 고용에 쓰도록 하는 게 낫다고 말한 부분을 주목한다"면서 "기업들로선 박 당선인이 기존 지배구조를 인정해준 부분에 대해 투자와 고용으로 화답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각 그룹들은 내년1월 새해 경영계획 발표 때 대규모 투자ㆍ일자리ㆍ사회공헌 계획을 함께 내놓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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