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옆 북촌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4개 층의 전시장을 그림으로 가득 채웠는데, 4층에 오르면 나의 그림에 앞서 소개하고 싶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4층 계단 옆의 창가로 감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고 또 하나는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창으로 겨울나무가 만들어 내는 추상풍경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세로로 난 창에서 바라보는 창덕궁의 기와능선이다.
보름 전 쯤 전시 개막식 날에는 눈이 펑펑 내려 감나무는 눈꽃을 머리에 이고 붉은 수줍음으로 애교를 부렸고, 정면의 큰 창은 마치 동영상이 흐르듯, 눈발이 휘날리는 장엄한 설경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창덕궁은 옛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설국의 나라에 온 듯 신비하고도 고요하게 오래 동안 시선을 붙들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공간을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생명을 경험하는 감성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단순히 관람자에게 내 그림을 읽게 하기 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장으로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만나 서로 눈빛을 반짝이며 '소통과 나눔'을 이야기했던 한 친구와 의기투합하였다.
문화예술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소셜 벤처 '대추씨'이다. 우리는 이 멋진 공간에서 '드로잉 힐링 서클'이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하기로 했다. 갤러리 공간에서 그림이 주는 명상적 힘을 받아,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며 타인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프로그램이다. 결국은 어른을 위한 '어른이 놀이터'인 셈이다.
프로그램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눈빛으로 배려하는 것'과 '함께 만드는 초상화 작업'이었다. 먼저 눈을 마주한다는 것, 눈빛으로 마음을 읽고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상대의 어깨를 터치하고 상대의 눈빛을 읽는 것은 무척이나 낯설고 부끄럽기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진지하게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시선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일상에서 눈을 마주하고 부드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특히 직장에서는 더할 것이다. 직원들 간에도 각자 책상 앞의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이야기하고, 상사는 직원의 눈이 아닌 뒤통수에 대고 이야기한다. 80년대 권태수라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 '눈으로 말해요. 살짜기 말해요'가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원을 이루고 앉아서 하얀 도화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얼굴을 상징하는 동그라미를 하나 그린 후 도화지를 옆 사람에게 전달해 가면서 그림을 완성해 가는 것은 참 설레는 작업이었다. 도화지에 적힌 타인의 이름에서 느낌을 떠올려보고, 다시 그 사람을 바라보며 그에게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하나씩만 찾아 그린 후, 다음 사람에게 도화지를 넘겨 또 다른 부분을 그리게 하는 방식이다.
결국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초상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눈 하나 코 하나 입하나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의 모습은 한 사람의 시점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보니, 그야말로 눈도 삐뚤 코도 삐뚤, 간혹은 괴기스럽기도 하고, 내 모습이 어떻게 그려지나 궁금증에 가끔은 목을 빼서 보게도 되고, 웃음이 빵빵 터지도록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그렇게 원을 돌아 나에게 온 초상화가 내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름과 모습에 대해 상대방이 적어 놓은 글들을 읽다보면, 순간 잊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기도하고, 뿌듯해지기도 한다. 나 스스로도 평소에 인색했던 칭찬들, 아름다운 단어들을 적어가며 나에게 다가오는 온화한 기운들을 느끼는 것이다.
갤러리에 그림들을 모아보았다. 함께 나눈 눈빛과 감정의 교류가 얼마나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갤러리 4층 창문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이제 눈은 녹고 감나무는 쪼그라져 앙상해졌지만, 아직 감나무의 주홍빛은 엷게 남아있고, 넓은 창에 가득 들어온 나무도, 눈을 벗어 낸 창덕궁 기와도 그 자리에 묵묵히 있다. 존재만으로도 고마움이 느껴지는 것은 갤러리에서 함께 한 소통과 나눔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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