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탑은 좋은 멘토로 진실성 갖고 선수들 대해야비판 받는 것은 감독의 숙명… 축구에 정답은 없다, 노력할 뿐팬들은 과거 쉽게 잊어 내년 최대의 적은 우승 자만심"
최용수(39) FC 서울 감독은 올 시즌 프로축구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라운드를 누비던 '독수리 스트라이커' 최용수와 사령탑으로 벤치에 앉은 최용수는 전혀 달랐다. 현역 시절의 이미지를 고려하면 최 감독은 '용장(勇將) 형' 지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지장(智將)'이나 '덕장(德將)'의 풍모를 많이 보였고 여러 사람으로부터 '독수리인줄 알았더니 여우더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식 사령탑 첫 해에 정상에 우뚝 선 최 감독을 18일 구리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만났다.
소통, 진심이 바탕이 돼야 한다
어딜 가나 '소통'의 중요성을 말한다. 최 감독도 팀 내부의 활발한 의사 교환을 강조한다. 단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한 마디라도 허투루 던지거나 지키지 못할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최 감독의 신조다. 그는 "진실성을 가지고 선수들에게 접근해야 합니다. 경기를 뛰는 것은 선수들이고 감독은 조언자일 뿐입니다. 선수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파악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아서 그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지도자의 몫입니다."라며 '사령탑은 좋은 멘토가 되야 한다'는 지론을 밝혔다.
최 감독은 대화를 즐긴다. 특히 축구와 관련된 얘기를 나눌 때는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축구를 논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벌렁거릴 때가 있다고 한다. 그에게 대화는 팀을 하나로 묶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는 사소한 것이라도 다른 사람의 견해를 구하는 걸 즐긴다.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다른 이가 깨우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치나 프런트, 선수에 이르기까지 질문의 대상에는 구별이 없다. '불치하문'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감독이 자신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자신의 답변을 팀 운영에 반영하면 누구라도 '내가 진정한 이 조직의 일원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 팀을 가족이라고 여깁니다. 가족이라면 누구도 소외 당하거나 무시 당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감독도 구성원의 한 명일 뿐입니다. 우승을 하더라도 다 같이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최 감독은 부산 금정초교 5학년 체육시간에 우연히 교사의 눈에 띄어 축구와 연을 맺었다. 공교롭게도 축구화를 신게 해준 은사는 그와 이름이 같다. 서용수 선생님. 이후 지휘봉을 잡기까지 '스승 복'이 끊이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사람 복을 타고 난 것 같다고 한다.
김호곤, 아나톨리 비쇼베츠, 차범근, 허정무, 거스 히딩크, 조광래, 이비차 오심, 이장수, 세뇰 귀네슈 감독 등 국내외 축구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장들이다. 최 감독은 스승들로부터 배운 것을 나름대로 집대성해서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스타일이다. 특히 어려움을 겪던 때 '스승'들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었는지를 떠올리며 돌파구를 생각한다. 원래 뭐든지 빨리 배우고 자신에 맞게 응용하는 데 능하다고 한다. 승부욕은 타고 났다. 무엇을 하더라도 지고는 못산다. 이길 때까지 덤벼든다. 농담 한 마디가 걸작이다. "제 성격상 아마 축구를 안하고 공부를 했어도 뭔가 이루지 않았을까 싶지요?" 라고 말하더니 껄껄 웃는다.
강하면 부러진다
최 감독은 불 갈은 성격을 지녔다. 현역 시절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풍기며 상대를 압도했다.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 별명이 '사무라이'였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난공불락의 관문을 만나면 무조건 '돌격 앞으로'를 외칠 것 같은 이미지다.
그러나 그는 난관을 만나면 피해서 돌아갈 줄도 알았다. '무공해(무조건 공격해) 축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출혈이 클 것 같으면 무리하게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요령껏 피해 갔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뇰 귀네슈 감독 시절 화려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던 서울은 상대 역습에 허를 찔려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비를 넘지 못했다. 결국 3년간 단 한 개의 우승 트로피도 따내지 못했다. 코치로 귀네슈 감독을 보좌했던 최 코치는 현실과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함을 배웠다. 그는 "비판을 받는 것은 숙명이다. 감독으로서의 업보다. 나를 비난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들이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지지는 않는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축구에 정답이란 없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FC 서울=K리그'라는 등식을 세계인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한 첫 단계가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 등극이다. 그는 "팬들은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지난 성취에 조금이라도 안주하면 위기가 찾아옴을 잘 알고 있다. 다음 시즌의 가장 큰 적으로 자만을 꼽고 있?그는 "자신과 타협하면 안된다"고 자기 주문을 걸고 있다.
구리=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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