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철물점.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유모(54)씨는 갑상선암을 앓고 있던 철물점 주인 이모(47)씨에게 "고생하는 게 안쓰럽다. 내가 아는 분의 공장이 있는데 돈 넣으면 월 3% 이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반신반의하며 투자를 시작한 이씨는 투자 초기 꼬박꼬박 이자가 들어오자 돈을 더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씨가 철썩같이 믿었던 유씨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 35차례에 걸쳐 15억원을 건네받은 유씨는 곧 연락이 끊겼다. 이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금천경찰서에 가서야 유씨가 자신같은 피해자 20명에게서 35억원을 뜯어낸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1년여가 흐른 지난 9월 "내가 멍청해 집을 날렸다"며 자책하던 이씨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유씨가 충남 천안에서 경찰에 잡혔다는 것이다.
사기꾼들 사이에서 '걸리면 잡힌다'고 소문난 형사들이 있다. 금천서 악성사기전담팀 구회진, 김상규 경위다. 팀원은 단 2명이지만 9~10월 두 달 만에 금천서에서 '악성 사기꾼'으로 지정한 27명 중 24명을 검거했다. 3일에 1명 꼴이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 악성사기전담팀 중 1위 실적이다. 서울경찰청은 사기범들 중 피해 액수가 크고 서민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10%를 선정, 집중 검거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전 경찰서에 악성사기전담팀을 구성했다.
두 형사는 "고도의 통신 수사를 바탕으로 한 집요한 데이터 분석과 추리력"을 경이적인 실적의 비결로 꼽았다. 구 경위는 "경제사범들이 경제활동과 금융거래를 끊고 잠적하면 수사 단서가 별로 없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범인의 휴대폰과 기지국 사이의 신호를 잘 분석하면 현재 어디 있는지는 기본이고 심지어 지금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구 경위와 김 경위가 사기꾼들을 상대한 경력을 합치면 22년. 수천명의 기상천외한 사기꾼들을 상대한 두 전문가들이 말하는 사기꾼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럴듯한 말'이다. 김 경위는 "경찰인 나도 속을 만큼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다는 말, 금방 돈을 갚을 테니 좀 빌려 달라는 말은 100% 사기"라고 말했다. 서울청은 19일까지 악성 사기꾼으로 수배한 1,226명 중 542명을 검거, 그 중 194명을 구속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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