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은 죽은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과거 무명씨들이 신랑 신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하기 위해 깎은 나무기러기를 모은 '목안, 꿈을 그리다'전과 나무조각가 김진송(53)씨의 '상상의 웜홀-나무로 깎은 책벌레이야기'전이 열린다.
목안(木雁)은 나무로 깎은 기러기. 홍색 보자기에 곱게 싸여 전통 혼례에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다. 평생 단 하나의 짝과 사는 기러기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나무로 깎기 전에는 아들을 둔 가정에서 기러기를 기르다가 혼례식 때 신부에게 건네곤 했었다.
전시중인 목안은 모두 80여 마리. '설악산 화가' 김종학씨를 비롯한 수집가 8명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단순하게 기러기 형태만 날렵하게 깎아낸 것부터 금방 날아오를 듯 날갯짓을 하는 모양, 심지어 이빨을 드러낸 해학적인 모습까지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어떤 것은 장인이 섬세하게 조각했고, 어떤 것은 필부가 대충 완성한 것처럼 투박하지만 100~200년 된 이들 손때 묻은 목안에서 조상들의 오랜 축원이 전해지는 듯하다. 27일까지 서울 신사동 예화랑. (02)542-5543
자칭 '목수 김씨'라고 하는 김진송씨의 전시에는 '움직인형 (automata)'이 나왔다. '악몽'이라는 작품에서는 관람객이 손잡이를 돌리면 나무인형에 생기가 돌면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지하실에 사는 거대한 구렁이가 잠든 소년의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꺅!' 소스라치게 놀란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구렁이가 재빨리 지하실로 몸을 숨긴다.
(1999)라는 책으로도 잘 알려진 유명 미술기획자이자 평론가였던 그가 1998년, 돌연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남양주에서 작업을 시작한 건 글쟁이로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글로는 다 하지 못하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목각 인형으로 열어가고 있다.
전시에는 100여 점의 나무와 철 조각, 30여 점의 움직인형, 그리고 이들로 제작한 영상 20여 점이 나왔다. 책을 보며 꾸벅꾸벅 조는 아이, 책의 바다에 빠지는 아이, 술을 마시는 노인, 비밀의 집 등의 이야기가 전시장에서 동화처럼 펼쳐진다. 내달 27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전시장. (02)399-1114.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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