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제스처냐, 전술적인 후퇴냐, 아니면 또 하나의 공격루트냐.
삼성전자가 18일(현지시각) 유럽에서 애플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요청을 전격 철회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사간 특허전쟁이 절정으로 치닫는 시점에, 더구나 최대 격전지인 미국에서 1심 최종 판결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쿨한 양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해석은 유럽연합(EU)의 반독점 조사를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것. 삼성전자는 애플의 특허제소에 맞서 통신기술특허를 무기로 맞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는 표준특허에 대한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사용을 보장한 프랜드(FRAND) 규약을 위반한 것이란 역공을 받아왔다. 급기야 EU집행위원회는 지난 1월말부터 삼성이 3세대 이동통신기술을 남용해 반독점법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위반사실이 인정될 경우 관련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삼성전자 입장에선 애플과 싸움에선 이겨도 더 큰 싸움에선 지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가 삼성의 결정에 대해 “유럽연합집행위로부터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 삼성전자가 제소철회를 발표하면서 “우리는 기술을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허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 모두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삼성전자의 이번 제소철회와 상관없이 조사를 계속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한층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제품 경쟁력에서 우위에 섰다는 자신감과 바로 직전에 전해진 미국 법원의 애플 영구판매금지 요청 기각 소식도 일정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선 법정 다툼보다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중시한다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긴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소송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쟁은 이미 이성적 판단 수준을 넘어섰으며, ‘소송이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는 상황. 이 시점에서 삼성전자는 제소철회를 통해 ‘확전 보다는 화해를 원한다’ ‘법정 보다는 시장에서 싸우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제소철회로 양사간 특허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는 평가. FT는 이와 관련, “이번 발표는 삼성과 애플이 전세계에 걸쳐 벌이고 있는 특허 소송전의 긴장감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출구 전략을 모색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애플이 어떤 대응을 할 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