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학에서 공부 시작한 지 13년 됐습니다. ‘왜 이걸 선택했을까’,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어요.”
‘우리말 지킴이’로도 잘 알려진 방송인 정재환(51)씨가 한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정씨가 쓴 박사 논문 ‘해방 후 조선어학회ㆍ한글학회 활동 연구(1945~1957년)’는 최근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2007년 3월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약 6년만이다. 그는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40일간 3차례 심사 과정에서 지적 받은 논문 구성과 내용을 매일 새벽 3, 4시까지 보완해왔다”며 “마지막 심사를 통과했다는 통보를 받은 뒤 정말 기뻤다”고 했다.
1982년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에 입학했다가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학교를 그만둔 그는 방송활동을 통해 ‘우리 말과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느꼈다. 2000년 39세에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한 이유다. 매일 오전 6시 집을 나와 밤 11시까지 학업과 방송을 병행하면서도 스무 살이나 어린 학생들과 경쟁해 3년 만에 인문학부를 조기 수석 졸업했다. 이어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해 4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 논문 초점은 조선어학회 활동에 맞춰졌다. 이승만의 한글맞춤법 간소화 정책을 설득하고 일제강점기부터 준비한 ‘큰 사전’을 완간하는 등 해방 전후 우리 말을 되찾고 재건하는데 기여한 조선어학회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조선어학회가 일제강점기에 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을 통일하고 표준말을 제정했기 때문에 해방 후 국어를 재건할 수 있었고, 이런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 정부가 해방 후 한글전용법을 제정, 국ㆍ한문을 혼용하던 언어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꿨다고 분석했다.
또 조선어학회를 이끈 원로 국어학자 이극로씨가 1948년 남북 지도자들이 통일문제를 논의하려 평양에서 모인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북쪽에 남게 된 이유도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찾아냈다. 조선어학회 회원인 원로학자 박지용(1924~2011) 부산대 명예교수가 2005년 12월부터 2006년 3월 사이 한글학회와의 대담을 녹취한 자료에서다.
“박 교수는 북쪽의 대표적 국어학자이자 정치가인 김두봉이 친분이 있던 남쪽의 이극로에게 ‘나라가 두 쪽 나도 말은 두 조각 나서는 안 된다. 사전편찬이 중요한데 북에 사람이 없다. 남쪽에는 최현배만 있어도 되니 북쪽으로 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증언했어요. 북에 갔다가 눌러 앉은 게 아니라 애초에 북쪽의 언어문제를 해결하려 마음 먹고 북쪽으로 간 거죠.” 그는 “이극로 등 북으로 간 학자들이 남북의 언어 동질성을 유지하려 애쓴 결과 남북한 언어 이질화가 심화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씨는 “세종대왕이 경복궁에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훈민정음을 반포했던 의식을 한글날에 재현해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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