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선이 바로 19일이다. 보수와 진보가 총집결한 상황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사이 예측불허의 초박빙 판세로 읽히고 있다. 어렵사리 이룬 야권 단일화와 3차에 걸친 대선후보 토론이 끝나고 이제 마지막 변수는 투표율이다. 아직도 전체 유권자의 10% 정도가 부동층으로 남아 있다는 여론조사분석 결과도 나온 바 있고 특히 젊은 층의 투표율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의 "우리 전략은 중간층이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면서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흑색선전이 난무하면 중간층의 투표율이 낮아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한 얘기라며 발뺌을 하고 있지만, 그는 얼마 전에도 2008년 촛불집회를 두고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확 제압했어야 한다"는 막말을 한 적이 있는 인사다. 국민의 정당한 민주주의적 권리를 억압 내지는 방해할 수 있다는 위험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럴수록 반드시 내일 투표로 의사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각종 음해공작으로 흙탕물이 된 선거판에서 누구 말이 옳은지도 잘 모르겠고 또한 누가 되든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에 투표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투표는 우리의 소중한 권리라는 뻔한 얘기 말고 내일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우선 "이쪽도 저쪽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다"면서 투표를 포기하지말자. 투표는 완전한 정보에 기초하여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rational) 선택이 아니다. 불충분한 정보일지라도 비교적 괜찮은 결정에 만족하는 타당한(reasonable) 선택 행위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하여 두 후보의 모든 이슈별 공약과 정책을 알 필요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이슈라 할지라도 자신이 관심 있는 이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에 기초하여 선택하자. 비록 개개인 수준의 판단은 불완전하지만 투표는 유권자 전체의 집합적 결정으로서 소위 집단지성이 작동할 수 있다. 실제 단지에 들어 있는 젤리 과자의 숫자를 알아맞히는 일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결정이 온전히 합리적인 개인의 판단보다 낫다는 많은 연구결과가 있다. 일찍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제퍼슨은 "농부와 교수 중 오히려 인위적 규칙(artificial rules)에 미혹된 적이 없는 농부가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까지 얘기한 바 있다.
그래도 만약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주위의 믿을만한 정보 소스에 귀를 열고 눈을 돌려보자. 정치학에서는 이를 정치적 결정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정치적 큐(cue)라고 부르는데 자신의 정당, 자신이 속해 있거나 관심이 있는 각종 사회적 집단과 신뢰할만한 미디어의 입장을 참고하거나 신망 있는 인사의 의견을 듣고 선택할 수도 있다. 가령 각 후보 별 찬조 인사들의 연설을 한번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으로 투표는 한번의 선택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한 게임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된 판단을 시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서 민주주의의 책임 정치 구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선택행위다. 흔히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한계와 관련하여 정치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시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종종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비록 하루일지라도 바로 이날이야말로 잘못된 지도자와 정치세력에게 책임을 묻고 심판할 수 있는 중차대한 날이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당의 이름과 겉모습을 바꾸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온갖 네거티브 공세와 흑색선전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세력에 대해 두 눈을 부릅뜨고 엄하게 심판하자. 비록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누가 '오십보'고 누가 '백보'인지 반드시 가리자.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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