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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18일] 힐링과 멘토가 필요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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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2월 18일] 힐링과 멘토가 필요없는 사회

입력
2012.12.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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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뽑은 키워드가 '힐링'과 '멘토'였다. 돌아보니 어디서나 힐링을 말한다. 힐링스파, 힐링여행, 힐링카페…. 더욱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도 '힐링캠프'이고, 가수 윤건은 '힐링이 필요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했다. 의사들에게나 익숙하던 힐링이 스트레스만큼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힐링의 심리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 말로는 '치유'라고 하는데, 아픈 것을 낫게 한다는 점에서는 치료와 같다. 그러나 힐링은 거기에 '갈등과 감정의 골을 메우다'라는 의미가 더해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패인 상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나아가는 느낌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 같다. 나아지는 과정에도 고통은 수반된다.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추는 것도, 고름을 짜내는 것도, 암세포를 떼내는 것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힐링은 보호해주고 아픔을 최소화하면서 자연스러운 회복을 강조한다. 지쳐있는 몸과 마음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반된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원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어떤 단어가 유행을 할때 그 이면을 볼 필요가 있다. 대중의 욕망과 욕구가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힐링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어버린 건 그만큼 지치고 아픈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치료라는 이름의 고통이 수반된 급작스러운 개혁을 견딜 힘도 남아있지 않아 누가 어루만져주면서 서서히 힘든 상처로 패인 마음이 아물게 해주기를 바라는 절박함이 투사되어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는 치료가 아닌 치유가 필요한 것이다. 신체 상태가 너무 안좋은 상태에는 아무리 시급해도 수술을 할 수 없다. 고장난 부분을 고친다고 해도 수술과 그 후 과정을 견뎌낼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러한 것이다.

멘토도 마찬가지다. 멘토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는 오디세우스가 자기 아들 텔레마커스를 친구 멘토르에게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20년 동안 그가 돌아오지 않자 멘토르는 텔레마커스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그 연유로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이자 스승'의 뜻으로 쓰인다. 여기저기서 우리 사회의 멘토를 찾는다고 아우성이다. 법륜스님이나 안철수 전 후보가 대표적인 이 시대의 멘토들이다. 내게도 가끔 멘토가 되어달라는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떨 때에는 직접 진료실로 이십대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멘토가 되어달라는 부모도 만난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또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 멘토의 유래를 알고 나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의 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멘토는 아버지가 부재할 수 밖에 없는 특수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대신해준 사람이다. 오디세우스가 있었다면, 전쟁이 끝난후 바로 돌아왔다면 그의 존재는 꼭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멘토를 갈구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한 편으로 부모가 존재함에도 부모 대신의 그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형국을 반영한다. 부모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도 멘토가 필요하다고 자식을 데리고 다니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부모가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고, 자식들도 부모를 부정하며 다른 곳에서 스승을 찾고 있다. 그만큼 부모세대에 대한 불신이 있고, 부모들은 자기가 배운 대로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혼란스러운 시대적 불안에 어찌할 바 모른채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지혜로운 그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다. 그저 그런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갈구하고, 실체를 알게 될수록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힐링과 멘토가 키워드가 된 한국사회, 치유와 길잡이에 대한 처절한 욕망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책으로 강연으로 그 목마름을 채우려 하지만 쉽사리 답은 떠오르지 않고, 아픔은 줄어들지 않는다. 바라건대 새해에는 힐링과 멘토라는 단어가 낯선 외래어로만 들리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게 좋은 세상이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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