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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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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의 경제학

입력
2012.12.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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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내수침체에도 불황을 모르는 옷이 있다. 수십만원, 심지어 100만원을 웃도는 고가인데도 불티나게 팔린다. 바로 아웃도어 의류, 그 중에서도 '패딩'이다.

패딩을 등산이나 레저 목적으로 입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자체가 패션의류가 되었다.

패딩의 강세는 길거리에서도 확인된다. 몇 년 전부터 '사실상의 교복'이란 말이 나올 만큼 즐겨 입었던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는 젊은 직장 여성들에까지 드레스 코드가 되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의 11월 아웃도어 상품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이달 9일까지 진행한 정기세일에서도 45%나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에서도 16일 기준 아웃도어는 63.4%나 신장했다.

대체 이 불경기 속에서도, 더구나 초고가인데도, 패딩은 왜 잘 팔리는 걸까. 업계에선 '패딩의 호황'뒤엔 세가지 정도의 독특한 경제적, 심리적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끝을 모르는 10대의 과시경향. 지금까지 청소년들 사이에서 패딩의 대명사는 노스페이스(일명 노페)였고, 비싼 노스페이스가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한다는 뜻에서 '등골브레이커'란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페'의 독주가 장기화되면서 청소년들이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코오롱, 블랙야크, K2, 빈폴아웃도어 등 새로운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노페는 기본이고, 이른바 '세컨드 패딩'수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오롱은 이승기를 모델로 내세운 47만원짜리 다운재킷 '헤스티아'가 초기 생산물량이 거의 다 팔려 재생산에 들어갔고, 블랙야크가 내놓은 39만8,000원짜리 '조인성 재킷'도 지난달 물량을 전월보다 3배 이상 늘렸지만 품절됐다. 올해 새로 선보인 빈폴 아웃도어도 아이돌 그룹인 미쓰에이의 수지와 김수현을 내세워 광고에서 착용한 '도브다운'의 경우 지난달 1만2,000장이 다 팔려 추가로 4,000장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선 "노페만으로도 힘들었는데 다른 브랜드의 패딩까지 애들이 원하니까 정말로 등이 휠 지경"이란 하소연 속에 '신 등골브레이커'란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패딩 강세의 두 번째 원인은 패션트렌드의 실용화. 패딩 수요자는 현재 10대를 넘어 20~30대 그중에서도 여성층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젊은 여성들이 딱딱하고 무거운데다 다른 옷과 맞춰 입기 쉽지 않은 코트를 벗어버리고, 가볍고 편한 실용적 패딩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지난 해까지만 해도 코트와 패딩의 판매비중이 6대4 정도였지만, 올 겨울엔 4대 6으로 역전됐다. 김선화 롯데백화점 영패션 상품기획자(MD)는 "지난해보다 패딩 판매율이 20% 늘어나며 코트 판매율을 앞서고 있다" 고 말했다.

세 번째는 업체들의 고급화 마케팅. 패딩의 수요층이 넓어지고 대중화되면서, 업체들은 남들과 차별화되고 있는 소비자 심리를 이용해 값비싼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상품이 대중화되면 소비자들은 그 다음으로 차별화를 원한다. 좀더 고급스럽고, 좀 더 비싼 브랜드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중엔 100만원이 넘는 패딩도 속속 출시되고 있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다. 100만원을 훌쩍 넘는 캐나다구스와 몽클레르 등 브랜드는 인기제품의 경우 이미 품절돼 대기명단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국산 아웃도어업체는 물론 시스템, 듀엘, 오즈세컨 같은 20~30대를 겨냥한 여성복 브랜드들도 90만원대 이상 패딩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패딩의 강세는 이례적"이라며 "소비자 심리를 파고든 마케팅의 결과"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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