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긴급상황에서 집주인의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 진입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용의자에게 부과될 형벌의 경중, 무기소지 가능성, 신속하게 진입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진입여부를 판단토록 했다. 지난 4월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일명 오원춘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오원춘 사건은 경찰이 집안에 강제로 진입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112신고 내용을 오판하고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 자신들의 잘못을 마치 법령이 미비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경찰은 지난 9월 정기국회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해 이러한 지침을 시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법무부와 학계 등에서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해 입법이 좌절된 사안이다. 법률개정이 무산되자 똑 같은 내용을 경찰청 내부지침으로 정해 어물쩍 시행하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절차적 문제 외에도 운영과정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찰은 인권침해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영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경찰관의 자의적 판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긴급상황이라는 판단 자체가 어렵고 애매모호해 경찰력의 오ㆍ남용이 우려되는 것이다. 나아가 실적경쟁에 내몰린 경찰이 막연한 심증만 갖고 남의 집에 임의로 들어가 수색을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무분별한 남용을 막기 위해 가택출입 이후엔 출입사실을 지체 없이 기록하고 상부에 보고토록 한다는 방침도 내부 사후검증은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현행 법에서 가택 강제진입은 영장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하되 긴급한 상황에 한해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만큼 인권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경찰은 자신들의 권한 확대에 매달리기 보다는 내부 기강확립과 수사력 보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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