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한 공립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청소 일을 하는 김순애(55ㆍ가명)씨는 지난주 초 30분 일찍 집을 나왔다. 김씨의 출근시간은 오전6시. 김씨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일찍 출근해 용역업체 주임의 자리에 김장김치가 담긴 보따리를 올려놓았다. 재계약(12월말)을 앞둔 김씨에게 주임은 하늘같은 존재. 주임 눈밖에 나면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김씨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평소에도 드링크제를 갖다주는 등'로비'를 했지만, 재계약을 앞둔 연말에는 신경을 더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김씨는"매일 도시락을 싸와 주임에게 주는 사람도 있고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여행용 캐리어를 통째로 주는 사람도 있다"며 "다들 쉬쉬하지만 연말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파리 목숨이라 어쩔 수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2. 서울의 한 대학에서 7년째 청소를 하고 있는 박현채(62ㆍ가명)씨는 1년 전 용역업체의 총무반장으로부터 "급전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고 100만원을 빌려줬다. 월급 135만원인 그에게는 큰 액수였지만 재계약(올해 2월)을 앞둔 시점이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줬다. 박씨는"우리 같은 비정규직들은 12월이면 총무반장 눈치를 보느라 속이 타고 피가 마를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따뜻한 연말을 보내야 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2월이면 해고의 칼바람 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당수 학교의 비정규직 사정은 엇비슷하다. 정부와 대선후보들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부터라도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다. 부산교육청과 광주교육청은 최근 각각 초등학교 행정보조직원 430명과 300명에 대해 재계약 불가방침을 밝혔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4년째 행정보조직원으로 일하다가 이달 초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김명숙(40ㆍ가명)씨는 "2년간 업무를 하면 정규직으로 써야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2년째 되는 해 다른 학교로 옮기도록 꼼수를 쓰더니 결국 해고통보를 했다"며 "요즘 농성을 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지내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울먹였다.
특히 2년 전 학교측이 청소ㆍ경비노동자 170여명의 일자리를 한꺼번에 빼앗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홍익대 농성'의 교훈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는 그대로일 뿐이다. 원청인 학교는 이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용역업체와 노동자들이 도급형태로 계약, 비정규직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부터라도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에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에서 용역 계약을 맺을 때 고용승계를 '권장'하지만 법적인 의무가 없는 것이 한계"라며 "서울시가 산하의 회사를 차려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한 것처럼 임금을 낮추더라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은종 단국대 교수는 "자신들이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며 이들의 고용을 나몰라라 하는 원청에게 사용자 지위를 부여하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며 "원청들이 비정상적인 고용을 통해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는 만큼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한다는 측면에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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