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위급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영장이나 주인 허락 없이 가택에 들어갈 수 있는 '긴급 진입권'을 지난 12일부터 지침으로 일선에 하달, 시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가 기본권 침해 우려를 들어 반대한 상황인데다 인권단체들도 경찰의 자의적 판단과 오ㆍ남용을 우려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청이 일선에 시행토록 한 '위급 상황 시 가택 출입ㆍ확인 등 경찰활동 지침'에 따르면 ▦살인과 강도, 강간 등 용의자에게 부과될 형벌이 무거울 경우 ▦용의자의 무기소지 가능성 ▦신속하게 출입하지 않으면 구조 요청자가 피해를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용의자가 현장에 있다고 믿을 만한 강한 근거가 있는 경우 등 범죄 위험에 상당부분 개연성이 있는 경우로 강제 진입 요건을 정했다. 압수수색 영장발부나 주인 허락을 얻을 필요 없이 강제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내부규정으로 시행한 것이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경찰의 '긴급 진입권'이 공권력의 오ㆍ남용과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만큼 충분한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법개정을 통해 시행돼야 할 사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경찰이 이 같은 지침을 시행하면서 법무부와 아무런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 10월 경찰에서 이와 관련한 법 개정 협의가 들어왔지만 헌법상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긴급 진입권에 대한 협의와 의견조율이 전혀 없었던 만큼 지침내용을 확인 후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인명ㆍ신체ㆍ재산에 대한 위해가 절박할 때나 피해자를 구조하기 위해 부득이한 경우 필요한 한도 내에서 타인의 토지ㆍ건물에 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경찰관직무집행법 7조에 근거한 지침"이라며 "막무가내로 집행한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행정법 전문가 9명과 정부 법무공단에 자문을 구해 진입 요건을 구체적이고도 까다롭게 정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권한 남용 시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발적 협조를 유도하되 진입 시 가급적 통ㆍ반장, 이웃주민, 자율방범대 등이 입회하도록 했다. 경찰은 올 4월 수원 우웬춘 사건 발생 당시 범행현장에 대한 허술한 수색으로 피해자가 살해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긴급 진입권 시행을 모색해왔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신체의 자유나 주거 안정권의 권리가 침해됐을 때 피해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심하다"며 "절차도 없이 현장 판단만으로 강제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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