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주택·다중채무의 늪, 복합 불황 온다
#1. 16일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국제도시. 상가건물마다 ‘아파트ㆍ상가 매매’라고 써붙인 부동산중개업소들의 대형 현수막이 겨울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상가ㆍ점포ㆍ아파트’라고 적힌 입간판도 즐비했지만 부동산중개업소를 오가는 손님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유리창에 ‘택지 전문’이라고 써 붙인 한 공인중개사무소에는 불마저 꺼져 있었다. 청라국제도시의 핵심 개발사업인 도시 외곽의 국제업무타운 부지는 경기 침체와 사업성 부족 탓에 2년째 착공조차 못한 채 황량한 모습이었다. 국제적인 금융ㆍ업무도시를 표방한 청라국제도시의 현 주소다.
#2.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하늘도시에 비해 청라국제도시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다. ‘불 꺼진 도시’로 불리는 영종하늘도시는 지난 8월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된 뒤로 4개월이 흘렀지만 입주율은 겨우 두 자리 수를 넘겼을 뿐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준공 승인된 영종하늘도시의 6개 아파트 단지 입주율은 11월말 기준으로 올해 계획 대비 11% 수준에 그쳤다. 이는 기반시설 부족과 각종 개발계획이 무산됐거나 지연된 탓이다.
장밋빛 전망을 앞세워 투자자와 실거주자를 끌어들였던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해 경기 1ㆍ2기 신도시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집 값 추락과 거래 실종 등으로 좀처럼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제는 바로 내년부터이다. 주택 대출과 빚에 짓눌린 ‘하우스 푸어’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이나 세입자 전세금을 다 갚지 못하는 ‘깡통주택’, 저신용·다중채무자가 늘면서 ‘장기 복합 불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최와 관련, 지방채 1조5,000억원(올해까지 5,850억원)과 이자 6,40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인천시민들은 빚 잔치를 벌여야 할 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주택 평균 경매낙찰률(경락률)인 76.4%를 초과해 담보대출 받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19만3,000여명에 달한다. 이중 93%(18만여명)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초과 대출 규모만 약 12조2,000억원으로, 이른바 ‘깡통주택’이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면서 금융회사 3군데 이상에서 주택 대출을 받은 저신용ㆍ다중채무자도 지난 9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23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 거주자로 대출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을 이용하다 보니 빚 조차 감당키 어려운 다급한 상황에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불황 여파가 금융과 내수 경기로 빠르게 번지면서 내년부터 본격적인 복합 불황이 현실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건국대 부동산ㆍ도시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이 공동으로 구성한 부동산모니터링그룹은 최근 “인천 청라ㆍ영종과 경기 파주ㆍ용인이 부동산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 혼란을 불러올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 지역은 중대형(면적 85㎡ 초과) 비중이 높은데다 기반시설 부족, 개발사업 무산이 맞물려 부동산경기 침체가 가중되고 있는 곳들이다.
수도권 집값을 이끌던 버블세븐(강남 서초 송파 목동 분당 평촌 용인)도 맥을 못 추고 있다. 서울ㆍ경기 아파트(주상복합 포함) 시가총액의 43%까지 장악했던 버블세븐의 비중은 최근 33%까지 하락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 측은 “버블세븐 시장을 견인할 동력이 없어 영향력 회복은 불투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2013년 전망 역시 암울하기만 하다. KB국민은행 ‘주간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 아파트값은 40주 연속 하락했다. 지난달 기준으로 수도권 3.3㎡당 평균 분양가는 1,054만원으로,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을 형성했다. 2007년 말보다 경기는 11.4%, 서울은 6.7%, 인천은 1.1%가 떨어졌다. 경매 물건도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수도권 아파트 물건 3,361개가 법원경매에 나와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법원경매정보전문기업 부동산태인의 한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상당수 아파트가 올해보다 자산과 담보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며 “대선 이후 내년 상반기가 지나도 경기회복을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연말 수도권 주민들의 우려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청라국제도시 입주자총연합회 관계자는 “평(3.3㎡)당 분양가가 1,300만~1,400만원이던 시절 구매한 아파트 소유자들은 이미 1억~1억5,00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며 “수도권 부동산 여러 곳에 투자했거나 아파트와 상가를 함께 분양 받은 사람들 중에는 한달 은행 이자만 400만원을 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경우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입주자들의 주택이 내년 대거 경매에 나올 것”이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개발사업자들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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