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총선에서 일본은 54년 자민당 독주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당을 선택했다. 480석중 308석을 민주당에 몰아줌으로써 파벌과 세습으로 점철된 자민당을 심판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불과 3년 3개월 만에 파벌과 세습 정치의 대표 주자이자 극우 성향의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이끄는 자민당을 다시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우익 정권의 탄생 배경으로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주변 국가와 영토 분쟁을 겪는 점을 꼽는다. 1990년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하락 추세를 보이던 일본 경제는 2000년대 중반 반짝 살아나는 듯 했으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다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2009년 총선이 당시의 경제 위기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의 반발이었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엔고가 초래한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정권 교체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기대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센카쿠 국유화 조치에 따른 중국의 반일 감정 악화 등으로 우익에 기대려는 심리는 더욱 확산됐다. 우익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가 이끄는 신생 일본유신회가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자민당과 민주당을 견제해야 할 제3세력의 분열이 자민당 압승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교도(共同)통신은 이번 선거에 12개 정당이 너도나도 후보를 공천, 비자민당 표가 분산됐다고 분석했다. 제3세력으로 출마한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아도 정당 비례대표에서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혈안이 됐고 그 때문에 자민당이 어부지리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좌충우돌 정치도 중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은 집권 당시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아동수당 대폭 인상 등 선심성 공약으로 표심을 사로잡았으나 결국 재원 마련에 실패, 공약을 무효화한 반면 소비세 인상을 관철시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민주당은 결국 100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자민당의 압승으로 정치권에 우경화 바람이 거셀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이 무너져 우익을 견제할 수 없다는 점은 정치의 손실이라고 일본 언론은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군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일본의 우경화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어 제동이 시급하다"고 우려하면서도 구체적인 해법은 내놓지 못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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