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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17일] 문인들의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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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17일] 문인들의 시상식

입력
2012.12.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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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작품을 쓰면서 엉덩이에 땀띠가 났다. 앞으로 엉덩이가 닳아 없어지도록 열심히 쓰겠다."

최근 한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20대 젊은 작가의 수상소감이다. 그는 수상의 기쁨을 감춘 채 그 상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공손하고도 익살맞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또 엉덩이에 땀띠 정도가 아니라 욕창이 나도록 앉아서 머리칼을 쥐어 뜯었을 것이다. 시인이며 소설가인 장석주는 이 자리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지핀 불에 몸을 데이는 것"이라고 했다.

등단 1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소설 '레가토'로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권여선(47)씨는 오랜 산고의 고통을 견뎌내고 낳은 소설을 이제 비로소 품에서 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수많은 결핍으로 메마르고 수많은 과잉으로 넘실댑니다.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레가토가 갑자기 훌륭한 작품으로 격상되는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좋은 작품이었음이 입증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제 저는 레가토를 놓아주려 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레가토라는 결과물이 아닌 그 과정, 레가토에 투여된 길고 괴로웠던 고민의 시간과 헛되었지만 고되었던 노동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 저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상을 받고, 앞으로 그런 고민과 노동으로 되갚으면 될 것입니다."

황석영 등단 50년을 기념하는'작가 황석영 문학 50년 축하연'은 삶을 읽어내는 연륜과 지혜가 엿보이고, 촌철살인의 재담들이 오고간 색다른 자리였다.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와 짓궂으면서도 애정 어린 농담까지 곁들어지면서 행사장은 어느새 흥겹고 훈훈한 사랑방 같았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황석영과 40년 지기이자 그의 소설을 여러 권 냈던 인연을 소개한 후 주인공을 이렇게 평했다. "문학판에서 황석영이 없었다면 얼마나 적막했을까. 예술판이나 정치판도 그렇지 않았을까. 유일하게 조용했던 곳이 경제계인데 이마저도 작가들의 원고료를 한껏 올려놨으니, 경제계에도 큰 영향을 준 셈이다. 황석영은 다루기 힘든 자영업자이다."작가의 워낙 넓은 오지랖에다 지칠 줄 모르는 입심을 에둘러 꼬집은 말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원로 평론가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고문의 축사는 황석영 문학인생을 함축한 한 편의 평론이었다. "그는 결코 한자리에 멈추어 안주할 줄 모르는 부랑자였습니다. 젊어서는 '삼포'를 오가며 이곳 저곳 '객지'를 헤매는 공사판 일꾼으로 떠돌았고 월남전에 참전하며 '장길산'으로 조선조 중세의 사회에 뛰어들어 반역을 일으키는가 하면, 어느 날 문득 금기의 땅 평양에 나타나 북의 주석과 술을 같이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어 미학에서는 가장 진지한 창조자였으며 그의 존재는 '당대를 거스르는 악한'으로서 가장 높은 부정의 정신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하의 황석영도 창작의 고통은 여전했다고 실토했다. "50년이면 저도 달인이 될 법하건만 종이 한 장을 열두 시간 넘도록 채우지 못하는 날이 한 달이면 스무 날이었다."

연말이면 가요, 연기, 코미디 등 각 분야의 시상식이 잇따르지만 어디에서 이러한 고품격 언어의 향연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심사위원님과 감독님, 스태프, 동료,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감사 드린다"는 '녹음기 대사'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요즘 신문사마다 신춘문예 심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수백 대 1,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후보작들을 놓고 심사위원들은 치열한 난상토론과 고민을 하고 있다. 오래 전 한 신춘문예 당선자는 글쓰기가 힘들어질 때마다 당선소감을 쓰면서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혼자서 자기 살을 깎고 피를 말리며 고독하게 '창작의 고통'을 이기고 우뚝 설 이들이 그동안 참고 참았던 얘기와 그들만의 사연이 궁금하다. 당선자들의 면면과 재기발랄한 언어들이 기다려진다.

최진환 문화부장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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