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토요에세이/12월 15일] 뉴욕타임스 정문의 시계가 멎는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토요에세이/12월 15일] 뉴욕타임스 정문의 시계가 멎는다

입력
2012.12.14 12:02
0 0

미국 수도 워싱턴을 장악하려는 '뉴욕타임스'의 집념은 대단했다. 뉴욕 본사에서 선발된 최고 에이스급 기자 49명을 워싱턴에 고정배치, 홈그라운드의 신문 '워싱턴포스트'의 기선을 제압하기위해 피나는 취재경쟁을 벌였다.

이 경쟁은 주효해서, 내가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만 해도 매일아침 68부의 '뉴욕타임스'가 백악관에 꼬박꼬박 배달됐다. 대통령가운데는 그날 아침 이 신문의 3분의 2를 읽지 않고는 집무를 시작하지 않던 대통령도 없지 않았다.

빼어난 신문은 무엇보다도 편집방향에서 차이가 났다. 미국신문 거개가 대통령기자회견을 요약해서 실었지만 '뉴욕타임스'는 달랐다. 전부를 그대로 실었다. 지면을 아껴 광고나 늘리려는 장사치관행을 이 신문은 일찍부터 버렸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연설이 지니는 기록성이야말로 이 신문의 제작 사시(社是) '인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뉴스'라 여긴 탓이다.

신문의 호칭도 달랐다. 뉴욕본사의 사옥 정면에 걸린 '타임스'라는 간판(디지털시계로 되어있다)만으로도 그냥 뉴욕타임스로 통했다. 그 시대 미국사회가 몇 시 몇 분인지, 또 미국이 이 시대에 기대를 걸어도 될지를 이 신문은 이처럼 '시간'을 빌려 나타낸 것이다.

뉴욕타임스를 자랑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지금의 추세대로면 미국의 종이신문은, 언론학자 필 마이어의 저서 에 따르면 2043년 봄이면 사라지게 된다. 2043년도 너무 너끈히 잡은 수치 일뿐, 매사추세츠공대(MIT) 언론학 교수 니콜라스 데그라폰테 박사의 표현대로라면 미국의 종이신문은 5년 이내 사라지게 되어있다.

벌써 사라진 매체도 속출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 전국지로 알려진 전국지 '크리스천 사이언스모니터'의 윤전기도 멎은 지 오래고, '워싱턴포스트'의 자매지로 세계적 명성을 날려 온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윤전기도 보름 후인 금년 말로 멎는다. '뉴스위크'의 윤전기가 멎으면 그 후유증은 모회사 '워싱턴포스트'를, 또 같은 경쟁지 '타임'을, 그리고 막바지엔 '타임'의 모회사 '뉴욕타임스'마저도 압박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시간'을 나타내던 시계가 멎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이야기다.

이유인즉 간단명료하다. 미국의 종이신문 모두가 방송과 통신에 밀렸기 때문이다. 나의 워싱턴 시절만 해도, 백악관이나 국무성을 출입하던 미국 기자들 가운데 수십 년 취재관습이 돼온 자체 뉴스개발이나 특종에 의지하는 기자는 그때 벌써 찾아보기 힘들던 때였다. 기자들 거개가 AP나 UPI통신이 띄운 기사를 텍스트로 삼아 기껏 통신에 뜬 기사를 뒤집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고쳐 쓰는 걸 능사로 여겼기 때문이다.

AP나 UPI에 비해 종이신문 기자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하루 한 번 돌아가는 일간지 제작시스템만으로는 '장돌 집어던지듯' 24시간 뉴스를 불러대는 통신기자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이나 통신과는 그런대로 경합관계를 유지했지만, 미국종이신문이 결정적 위기를 맞은 것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 특히 연이어 등장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의 등장으로 손을 들고 만 것이다.

한국의 종이신문은 어떠한가. 언론재단이 2008년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국 종이신문의 소멸은 미국보다 엄청나게 빨라, 전국에서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들은 2021년 봄이 되면 0%가 된다. 지금부터 9년 후다.

올 한해 국내신문잡지 15개사가 사운을 걸고 기획특집 보도한 기사를 지금 찬찬히 살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종이매체를 위기에 빠트린 공적(公敵)이라 설까, 동아일보와 월간조선이 SNS를 똑같이 기획특집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일보의 특집 '장강(長江) 6,300km를 가다'도 돋보인다. 허나 열다섯 편의 기사를 통해 한 가지 공통으로 느낀 건, 한국 신문 모두가 지금 괴로운 시련을 겪고 있다는 점이었다. SNS의 공동피해자!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김승웅 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swkim4311@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