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살았던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의 거장 안토니오 비발디의 이야기다. 그가 세계 최고의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콘서트홀은 대만원을 이루었다. 연주가 시작되면서 청중들은 앞을 다투어 찬사를 내놓았다. '명품 악기니까 저렇게 기막힌 소리가 나는구나.' 늘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갑자기 비발디가 연주를 멈췄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악기는 산산조각이 나고 청중들은 놀라 기함을 했다.
그 경악과 동요가 가라앉기 전에 진행자가 앞으로 나왔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비발디 선생은 훌륭한 음악이란 악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드리려 한 것입니다." 청중들은 홀이 떠나갈 듯한 박수로 그 놀라운 사태에 응답했다. 가히 협주곡의 아버지 비발디였다. 사진기가 좋아서 사진이 훌륭하다면 사진작가는 어디로 갈까. 재료나 그릇이 좋아서 음식이 훌륭하다면 일류 셰프는 또 어디로 갈까.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속에 숨은 본질인 것이다.
서양 미인의 대명사는 클레오파트라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그의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아졌더라면 지구의 표면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쓴 것은, 이집트 제국의 마지막 여왕으로서 로마의 역사적 인물들에 미친 영향력을 말한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는 그렇게 대단한 미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2001년 런던 브리티시박물관에서 열린 '클레오파트라 특별전'의 기록을 보면, 150cm의 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와 매부리코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 고대사의 종막을 감당했던 이 여왕이 무슨 수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자식을 생산했으며 후대에까지 미인의 이름을 떨치게 되었을까. 그 답은 외형의 용모보다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화술, 곧 지성적 매력에 있었다. 거기에다가 음성이 무척 감미로웠고 외국어에도 능통했다고 전한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학자의 수준에 도달했고, 어려서부터 이집트 왕실 도서관에서 책을 탐독하여 어떤 권력자와도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현명한 여자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동양의 절세미인 양귀비의 경우에도 유사하다. 양귀비는 원래 당나라 현종의 아들 수왕의 비였으나 현종이 가로챘다. 얼마나 미모가 뛰어났으면 아들을 겁박하여 며느리를 취했을까. 초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양귀비는 풍성한 몸매의 소유자이나 키가 작고 쌍꺼풀 없는 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춤과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고 총명한 언행을 보였다고 하니, 역시 당대의 군주를 매혹한 힘은 따로 있었던 셈이다.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통하는 서시·초선·왕소군도 모두 자기만의 특별한 매력을 따로 가졌던 여인들이다.
조선조 제21대 왕 영조의 계비였던 정순왕후 김씨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66세에 이른 왕의 배필로 간택되었다. 후궁 가운데 장희빈을 중전 자리에 앉혔다가 온갖 곡절을 다 치른 아버지 숙종의 유언을 따라, 영조는 후궁이 아닌 양반집 규수 가운데서 왕비를 직접 선발했다. 50세의 나이 차를 넘어 영조가 정순왕후를 선택한 것은, 지혜로운 답변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물이나 산이 아니라 인심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목화라고 대답하는 어린 처녀는, 할아버지 나이 뻘의 영조를 감탄하게 했다.
그렇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현상이 아니라 본질 가운데 숨어 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세월이 가도 바뀌지 않는 근본적 가치를 가진 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우리는 이 본질이 제대로 된 후보를 뽑아야 한다. 각자가 바라보는 본질의 가치는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시각들이 올곧고 충실하게 모여 일정한 값을 형성한다면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령에 해당한다.
강의실을 버리고 거리로 나선 교수, 창작실을 버리고 선동가가 된 작가는 여기에 자격 미달이다. 대선 후보들도 지금은 목전의 운명에 겨를이 없겠으나, 결정이 난 이후에는 자칫 선거판에 휩쓸렸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본질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상식과 본질 위에 나라를 바로 세우는 미래를 다시 꿈꿀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ㆍ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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