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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15일] 슬픈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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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15일] 슬픈 아리랑

입력
2012.12.1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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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고통 받는 민중의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옛 노래다. 심금을 울려주는 미(美)는 모두 슬픔을 담고 있듯이, 한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비극적이었듯이, 이 노래는 삼백년 동안이나 모든 한국인들에게 애창되어 왔다." 일제강점 말기 중국을 떠돌던 독립운동가 김산의 구술을 받아 만든 님 웨일즈의 전기 에서 저자가 아리랑에 대해 내놓은 분석이다. 이 아리랑이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 김산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아리랑고개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이 고개 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던 한 그루 소나무는 조선왕조에서 수백 년 동안 사형대로 사용되었고, 수만 명의 죄수가 이 노송의 가지에 목이 매여 죽었다. 이들 대다수는 압제에 대항해 봉기한 빈농이나, 학정과 부정에 대항해 싸운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노래를 만들어 아리랑고개로 오르면서 불러오다, 목숨이 끊기기 전에 감옥에서 불렀던 가슴이 저미는 노래가 됐다고 한다.

■ 아리랑고개는 일제 강점기 때 박승희가 쓴 희곡의 제목이기도 하다. 일본인 돈놀이꾼에게 얻어 쓴 빚을 갚지 못해 집과 재산을 빼앗긴 길룡이네 가족이 고향을 등진 채 떠나게 된다는 줄거리다. 길룡이는 사랑하는 연인과도 헤어진다. 이들이 북간도로 유랑의 길을 떠날 때 마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을 불러준다.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수탈을 당하는 민족의 아픔을 다룬 작품으로 공연 때 연출자 작가 관객이 모두 어울려 눈물바다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원래 정릉고개로 불렸던 아리랑고개는 1926년 나운규가 이 고개에서 영화 을 촬영한 뒤부터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요리업자들이 정릉 일대에 고급요정을 꾸며놓고 아리랑 고개라는 표목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어떤 연유에서든 아리랑을 부르며 아리랑고개를 넘는 것은 우리 삶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고, 유랑을 해도 아리랑에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이 독립운동가 김산의 분석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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