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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빌렘 플루서의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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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빌렘 플루서의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입력
2012.12.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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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에 대한 선진적인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는 빌렘 플루서(1920~1991)의 1983년작으로, 사진을 철학적 관점에서 논의한 저작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코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플루서는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브라질 군사정권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을 거듭하며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문화의 패러다임 변화를 필생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살아있을 때보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묻힌 이후 더욱 집중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연구주제와 논의가 그만큼 앞서나갔음을 보여준다. (한 독일 언론은 그에게 '디지털 사상가'라는 별명을 붙였다)

플루서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제기하는 질문은 '온갖 편리한 장치들에 둘러싸여 탈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자유로운가'이다.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이를 논증하고자 플루서가 택한 소재가 바로 사진(기)이다. 그림과 텍스트로 세계를 묘사하는 유구한 전통은 마침내 사진기라는 장치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사진기와 그 산출물인 사진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세계를 본질적으로 표현하게 됐다며 이를 인류의 진보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플루서는 이런 확신이 명백한 오해라고 단언한다.

플루서가 보기에 사진은 그것을 찍은 사람이 아니라 사진기라는 복잡한 메커니즘의 산물이다. 즉 사진기라는 장치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가 구현된 것이 사진이며, 사람이 사진에 대해 한 일은 (사진기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그저 사용설명서대로 셔터를 누른 것뿐이라는 것이다.

플루서는 나아가 사진과 피사체가 본질적으로 연관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밝힌다. 예컨대 사진 속 아기가 예쁘게 나온 것은 그 아기가 실제로 예쁘기 때문이 아니라 사진기가 내장된 프로그램에 따라 피사체를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피사체와 사진기를 거쳐 나온 형상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컬러 사진이 흑백사진을 대체한 것은 장치 및 프로그램이 고도화된 결과이며 이로써 사진은 대상의 본질과 더욱 멀어졌다고 플루서는 해석한다.

사진기는 플루서에게 탈산업사회에서 장치와 인간의 관계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소재다. 탈산업사회의 장치는 외견상 사용자의 접근 및 활용을 용이하게 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사용자가 온전히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구조화된 채 보급돼 사용자의 사고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루서가 말하는 장치는 곧 매체인 까닭에 이러한 비판적 논의는 미디어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플루서는 그러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장치에 순응해 잉여적 사진을 생산하는 '카메라맨'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사진사'를 제시한다. 사진사는 프로그래밍된 장치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적 의도를 담은 정보를 산출하려는 사람이다. 플루서는 탈산업사회에서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장치를 둘러싼 권력구조를 탐색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대신 장치의 본질을 철저히 연구해야 하며 이를 실천적으로 적용하고 계몽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들, 즉 사진사 같은 이들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

기존 논의를 정리하거나 다른 문헌을 인용하는 일 없이 저자의 독자적 논의가 100쪽 남짓한 단출한 분량에 압축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까다로운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진(기)라는 친숙한 소재를 둘러싼 논의라 이해하기 마냥 어렵지는 않다. 플루서가 마침내 제안하는 것은 '장치에 대항해 유희하는 자유'다. 오늘날의 삶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만하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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