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바이칼호 오두막에서 6개월… 도시인 '은둔의 로망' 실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바이칼호 오두막에서 6개월… 도시인 '은둔의 로망' 실현

입력
2012.12.14 11:56
0 0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2㎞ 남짓 떨어진 호숫가 숲에 살며 쓴 에서 오두막 생활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프랑스 여행작가 실뱅 테송(40)의 반년 오두막살이를 소로에 견주는 것은 외람된 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 러시아 바이칼호 주변 오두막에서 홀로 겨울과 봄을 지낸 일기를 모은 에서 그는 오두막에 살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너무 수다스러웠다. 나는 침묵을 원했다. 밀린 우편물과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로빈슨 크루소를 시샘했다. 파리의 내 집보다는 여기가 훨씬 더 훈훈하다. 장 보는 일이 지겨웠다. 마음껏 소리지르고 벌거벗고 살고 싶었다. 전화와 각종 모터 소리들이 끔찍이도 싫었다.'

테송은 소로만큼 뜻이 고상하지도, 원대하지도, 철학적이지도 않다. 소로처럼 직접 손으로 오두막을 만들어 세운 것도, 제 손으로 밭을 일구어 먹을 거리를 구한 것도 아니다. 빈 오두막을 빌리고 바이칼호 서쪽 이르쿠츠크의 슈퍼에서 잔뜩 쇼핑해 가져다 먹었다. 게다가 그 짧은 생활을 프랑스 방송이 촬영까지 하도록 했으니 그가 책에서 거듭 이야기하는 '은둔'과 거리가 먼 것은 말할 것 없다. 세속적이다 못해 속물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래서 이 짧은 오두막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사회에서 넘쳐나는 풍요와 낭비에 절망한다거나 빼곡히 들어찬 스케줄과 일의 중압감에 짓눌린다. 서로에게 상처 받지만, 깨고 나온 알 껍질 버리듯 그런 삶을 완전히 벗어 던질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 테송은 모델이 될 수 있다.

그의 오두막 생활을 요약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고독이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100㎞ 떨어져 있는 고립에서 오는 것이지만 '1시간 전부터 의자에 앉아서 햇살이 탁자 위를 천천히 나아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넘치는 여유와 행복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고독은'생각을 낳는다'. '모든 수다를 물리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며 '우리의 기억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혼자만의 빈 공간과 남아도는 시간을 채우는 중요한 행위는 산책과 독서다. 니체의 에서 노자의 까지 약 70권의 책을 싸들고 간 그는 차와 보드카를 마시며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나 소로의 , 샤토브리앙의 등은 은둔과 고독을 다룬 책들이다.

그의 생활은 물론 크루소처럼 타의에 의한 것도 아니고, 루소만큼 철학적이지도 않고, 랑세처럼 종교적이지 않다. 시베리아 타이가 속에서 '행복의 순간들을 수확'하려는 그에게는 향불의 냄새보다 진달래 향기가 감미롭고, 조용한 하늘보다 활짝 핀 화관이 더욱 황홀하다. 하지만 '소박함, 엄숙함, 망각하기, 버리기 그리고 안락함에 대한 무관심'은 애써 얻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온다.

영하 30도의 겨울 추위를 생각하면 바이칼호 주변 오두막집까지는 선뜻 마음이 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부추기는 은둔 생활의 매력을 쉽게 잊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한다. '상처를 핥는 작은 구멍'이라는 오두막 생활 동안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부평초 같이 떠도는 남자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는 5줄짜리 절교 선언을 위성전화 문자메시지로 받았다. 프랑스 문학상인 메디치상 2011년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