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제법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이들과의 식사 자리였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점잖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화제에 오르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2명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다른 2명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중립에 서야 할 언론인이기에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발언 톤은 더욱 높아졌고, 호칭에서 후보란 직함은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양측 모두 지지 후보가 당선돼야 할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고 크게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방 말에는 귀를 닫아버린 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제 주장만 되풀이하곤 했다.
할 수 없이 한국일보와 한국행정학회가 지난 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10회에 걸쳐 두 후보의 정책 공약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말해주며 중재를 해보려 했다. 두 후보의 공약은 대동소이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실현 가능성은 박 후보 쪽, 실현 의지는 문 후보 쪽이 앞선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그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언쟁이 또다시 이어졌다. 대선 토론이 선악(善惡) 논쟁으로 바뀌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와 관련 한 정치 전문가가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표심은 대부분 유전자(DNA)에 의해 결정되기에 이 같은 대립적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집안 분위기가 보수 성향의 여권 쪽이면 자신과 직접적인 상관이 있든 없든 간에 이번 대선과 같이 기호 1번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고, 반대로 대대로 진보 쪽 야당 성향이면 누가 나오든 간에 기호 2번으로 방향이 자연스레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또 체질적으로 반대 편에 서 있는 후보에 대해서는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서로 설득이 되거나 합리적인 토론을 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 4ㆍ11 총선을 앞두고 서울 노원 갑 지역구에서는 이노근 새누리당 후보와 김용민 민주당 후보가 맞붙었다. 여기서 '나는 꼼수다' 진행자 출신의 김용민 후보에 대한 과거 막말 논란이 선거전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핫 이슈로 떠올랐다. 김 후보의 과거 낯 뜨거운 발언이 연일 논란이 됐고 야당 성향 지지자들도 김 후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 때문에 개표 전에는 누가 봐도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 이 후보가 여유 있게 낙승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 후보(50%)가 김 후보(44.2%)에게 5.8%포인트 차이의 신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새누리당으로 공천을 받았던 문대성 후보도 부산 사하갑 지역구에서 선거 내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논란에 휩싸였지만 45.1%의 득표율을 올리며 거뜬히 당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DNA 표심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결과다.
오랜 역사 속에 지역간 대립이 이어져왔고 최근 들어서는 계층별 세대별 반목마저 심해지고 있어 DNA 표심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인보다 집단 문화에 익숙하고 가부장적 분위기가 강한 우리 정서를 감안하면 이 같은 DNA 표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표심의 만연화는 사회적 논쟁을 합리적으로 이끌기는커녕 적대적 대결 구도로만 유도하기 일쑤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DNA 표심에 의한 유권자를 여야 각 40%정도로 본다. 20%의 부동층을 놓고 싸우는 게 우리 선거란 것이다.
DNA 투표 양태가 다음 청와대 주인을 가리는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식이 통하는 선거, 건전한 토론 위에 객관적 판단이 이뤄지는 선거 분위기는 요원해졌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고 '혹시 내가 80%에 해당하는 DNA 표심 유권자는 아닌가'하고 잠시라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DNA가 아닌 이성과 상식으로 표심을 정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싶다면 말이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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