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내공'을 쌓은 덕분인지 '독이 든 성배'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유독 '외풍'이 심한 대전 구단의 제의였음에도 김인완(41) 신임 대전 감독은 자신 있게 '잔'을 들었다. 2013년 K리그는 첫 프로 사령탑 지휘봉을 잡는 젊은 감독들의 패기와 도전이 유독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중 '유스 시스템의 산증인'인 김 감독이 '축구특별시' 대전에 어떤 색깔을 입힐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김 감독을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봤다.
박주영 지동원 윤석영과 남다른 인연
김 감독은 유스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쾌거의 주역인 박주영(셀타 비고)과 지동원(선덜랜드), 윤석영(전남)이 모두 김 감독의 손을 거쳤다. 그는 "박주영과는 2001년 브라질 유학 시절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당시 브라질에 파견돼 23명의 유망주들을 6개월간 보살폈다"며 "한국으로 돌아갈 때 23명 중 16명의 선수가 편지를 보냈는데 박주영이 쓴 것도 있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편지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며 아련한 추억을 얘기했다.
독일 3ㆍ4부리그에서 선수 생활과 지도자 연수를 병행하려 했던 김 감독은 전남 드래곤즈의 제안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산하 광양제철중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가르친 제자 중 지동원이 단연 최고다. 너무 부드럽고 간결했고, '정석'대로 골을 넣어 깜짝 놀랐다"며 "(지)동원이한테 축하 전화가 왔다. 대뜸 '대전으로 안 불러주세요. 선생님과 함께 하고 싶어요'라며 농담을 하는데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은퇴하기 전 혹시라도 K리그에서 만날 수 있으면 함께 해보자'라고 말해줬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워낙 능력 있는 친구라 잘 해낼 것"이라며 '애제자'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다.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전남 유스팀의 창단 멤버로 광양제철중ㆍ고에서 8년간 유망주를 발굴한 그는 이상주의자였다. 하지만 점차 현실주의자로 변했다. 그는 "처음에는 지도자가 몸소 보여주면 선수들은 무조건 그 마음을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며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100% 자율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자율과 통제의 틀 속에서 유연한 사고로 선수들을 이끌겠다"고 지도 철학을 드러냈다.
학습의 결과로 깨달은 게 또 있다. 그는 "선수들의 말을 100% 믿지 않는다. 오로지 연습만 믿는다. 훈련 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리 선수가 '자신 있다.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도 소용 없다"며 '연습=진리'라는 공식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스스로 '큰형' 같은 지도자라고 말하며 소통을 중시한다. "무조건 따라오라고 누르기보다는 선수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항상 선수들을 가까이 두도록 노력할 것이다."
상위권 진입 욕심은 '사치'
지난 5일 취임식 이후 김 감독은 시즌 구상에 여념이 없다. 벌써 선수 구성의 60%를 채웠다. 그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전력을 꾸려야 한다. 그 동안 저평가된 선수들로 채워서 만들어갈 예정"이라며 "물론 감독이라면 좋은 선수에 대한 욕심이 있다. 하지만 감독이 원하는 선수로 모두를 채울 수 있는 팀은 없다. 선수 조합을 소신껏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처럼 비장함도 엿보였다. 중학교 지도자부터 단계를 밟으며 올라온 그는 "선수들과 이제 감독만 되면 '퍼펙트 지도자가 된다'고 농담으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프로팀 코치에서 수석코치가 됐고, 감독 제의까지 들어오자 이건 마치 한 번 도전해보라는 계시 같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전이 강등 위험 전력으로 평가 받는 터라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 감독은 "내년에는 최대 3팀이 떨어진다. 올해보다 1부리그 잔류가 3, 4배 어려워진 셈"이라며 "사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상위권 진입'을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승점 쌓는 축구를 추구하겠다. 팬들이 순위를 보고 기대감을 갖게끔 만들겠다"고 뚜렷한 목표를 제시했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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