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농부들이 체리 등 과일을 수확할 때 먼저 잘 익고 때깔 좋은 것만 골라 내놓는 관행을 일컫는다. 그러면 언뜻 남은 과일 전체의 품질이 좋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이런 사리에 빗대 논리학에서는 논리적 오류를 지칭할 때 쓴다. 엇갈리는 여러 사실과 근거 가운데 논지(論旨)에 맞는 것만 선별해서 채택, 결국 논리적 오류에 빠지는 잘못을 말한다.
■ 금융시장에서는 다른 뜻으로도 쓴다. 고객들이 숱한 상품 가운데 조건이 좋은 것만 골라 사가는 관행을 가리킨다. 그리 되면 금융회사로서는 이윤이 적은 것만 파는 꼴이 된다. 또 농구 경기에서는 기습 전술을 의미한다. 수비 쪽이 발 빠른 선수 한 명을 수비 전방에 두었다가 가로채기나 리바운드로 공을 잡은 뒤 곧장 패스, 레이업이나 덩크로 쉽게 득점을 올리는 전술을 말한다. 이 선수를 체리 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른다.
■ 북한의 '기습적' 로켓 발사를 두고 논란이 많다. 장거리 로켓 발사가 실패하거나 스스로 포기하기 바라는 희망적 관측(Wishful thinking)에 얽매여 체리 피킹하듯 하는 바람에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리 군은 물론이고 최고의 위성 감시 능력을 지닌 미국도 북한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결과가 됐으니 언뜻 지나친 비난은 아니다. 정부를 '안보 무능'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럴 만하다.
■ 이런 가운데,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의 풀이가 눈에 띈다. 이 신문이 인용한 중국인 전문가는 "북한이 기만 전술로 세계를 농락했다"고 논평했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이 경고한 '로켓 요격'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지연 전술을 펴다가 기습적으로 발사를 감행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세계가 속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해군 이지스함이 로켓 발사를 즉각 탐지한 마당에 마냥 '안보 무능'을 탓할 건 아니다. 그보다는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현실을 고민할 일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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