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천국인데 왜 나가려고 해."
중증장애인 김동필(35)씨가 2010년 28년간 살았던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자립한다고 했을 때, 시설 직원이 한 말이라고 한다. 김씨는 뇌병변장애로 휠체어 없인 이동이 불가능하고, 언어장애로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김씨는 그 해 10월 자립생활을 선택했다. 김씨는 어눌한 어투지만 "자유 없는 천국보단 자유가 있는 현실을 살고 싶었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12일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생활하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16명의 장애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20개 단체가 지난 3년간의 자립생활을 평가하기 위한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2009년 12월부터 차례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꿈에도 그리던 자립생활이지만, 지난 3년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지적장애인 김준영(26)씨는 자유의 쓴맛을 봤다. 지난해 4월 자립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때마침 대형마트에서 농산물을 검품하는 일자리도 구했다. 하지만 오전 4시2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7개월이 지나니 체력도 한계에 달했고, 무단 결근을 했다. 김씨는 결국 권고사직을 당한 후에야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알았다. 다시 일자리를 구한 뒤엔 가장 먼저 알람시계를 샀다. 김씨는 "이젠 지각을 하지 않는다"며 "빨리 돈을 모아 내 집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대인관계를 맺는 일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 십 수년 동안 시설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 탓이다. 중증 지체장애가 있는 장희영(40)씨는 "시설에 있을 때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시설 직원과 함께 생활하는 장애인이 전부"라며 "처음엔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자립생활을 시작한 뒤 일반인, 봉사자들을 자주 만나면서 달라졌다. 활동보조인으로 2년째 장씨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채순(59)씨는 "너무 늦게 세상에 나온 탓에 장씨가 한동안 고생이 심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사교적인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그 어떤 어려움보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주거 문제. 휠체어를 타고도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찾은 집은 집주인들이 세를 내주길 꺼려했다.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다 2009년 이들과 인연을 맺은 임영희(35)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겨우 살 만한 집을 찾아도 장애인이 생활할 거라고 하면 집주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며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등 추가부담이 들지나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의 자립생활 후 이들은 좌절감보다는 도전의식으로 가득 찬 듯했다. 이들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잠시 방황도 하면서 좌충우돌 살지 않냐"고 했다. 가장 먼저 자립생활을 시작한 정승배(33)씨는 "장애ㆍ비장애를 떠나 삶은 진행형일 뿐이지 않느냐"며 "새로운 삶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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