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에서 일어난 한국인 연쇄 폭행 사건은 안타까운 사안이지만, 한국에서는 부정확한 보도로 침소봉대된 측면이 크다. 폭행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과장 보도된 점과 그로 인한 후유증을 언급하고자 한다.
단기간에 이번처럼 많은 한국인이 폭행 피해를 당한 것은 호주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유학이나 영어연수, 워킹홀리데이(워홀) 목적으로 호주에 왔다가 길거리에서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은 동포로서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이 피해자들이 가족 없이 혼자인 상태에서 폭행을 당했고 경찰로부터 따듯한 위로를 받지 못한 경우 더욱 괴로웠을 것이다.
호주는 치안이 비교적 양호한 나라이지만 필자가 거주하는 시드니에서도 매일 수십건의 강ㆍ절도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호주도 다른 영미국가 대도시들처럼 늦은 밤에 혼자 걸어다니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대체로 밤 11시부터 새벽 4시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 이번에 발생한 6건의 한국인 폭행 사건 중 5건이 이 시간대에 일어났다.
호주에선 2009년 인도계 유학생들이 멜버른 연쇄 폭행 사고로 수십명이 다쳤고 숨진 사례까지 있었다. 이후 호주를 방문하는 인도계 유학생이 절반 이상 격감해 호주 유학산업에 치명타를 줬다. 인도계 유학생이 타깃이 된 배경에는 심야 시간대에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 가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멜버른에서 편의점과 주유소, 택시 운전 등 24시간 영업을 하는 업종에서 다수의 인도 청년들이 야간에 부업으로 일을 하고 있다. 자정 무렵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하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례가 많았다.
이번에 한국인 청년들이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에서 당한 폭행 사건들도 인도계가 당한 것과 유사하다. 호주에는 워홀 비자로 방문한 한국인 청년들이 2만~3만명에 이른다. 2만여명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있다. 다른 아시아권 청년들보다 한국 청년들이 밤에 돌아다니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유학생이나 워홀 청년들이 대체로 집값이 싼 시티 인접지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곳들이 우범지역이며 특히 밤에 혼자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우려 외에도 한국 언론의 과장 보도로 인한 한호관계의 왜곡과 호주 동포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 또한 간과하기 힘들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호주에 파견된 한 통신사 특파원의 최초 보도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결과적으로 기사의 상당 부분이 과장보도가 됐다. 6건 중 인종차별적인 동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9월 말 멜버른에서 발생한 장모(33)씨 폭행사건 하나다. 나머지 사건은 우발적인 동기가 강한 폭행 사건으로 파악되고 있다. 모든 사건을 인종차별적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이며, 더욱이 한국인을 겨냥한 인종증오적 폭행이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수의 한국 언론들이 사건 동기가 밝혀지기도 전에 호주에서 한국인이 피해를 당하면 무조건 인종차별과 연계를 시키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호주가 극단적인 인종차별국가로 인식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급기야 한국의 한 일간지는 시론에서 "호주를 여행주의경보국가로 지정하자"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했다.
그동안 호주 관련 뉴스가 한국에서 크게 보도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내용에 대한 왜곡 보도 사례가 몇 번 반복됐다. "한국인들이 호주로 돈을 빼돌려 수천만 달러의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한 지상파 방송이 현지 취재 통해 보도했지만 관광가이드의 루머와 일부 에이전트의 과장된 이야기를 검증없이 그대로 전했을 뿐이다. 만약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은 호주 부동산을 매입했다면 가장 먼저 호주 언론에서부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 통계 등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채 10여건의 매입을 수백건의 매입이라며 호들갑을 떤 것이다.
한국과 호주 관계는 지난해 수교 50주년을 맞으며 각 분야가 늦은 감이 있지만 점차 깊어지고 있다. 가장 낙후된 분야 중 하나가 언론이라고 본다. 아직도 한국언론에선 호주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보도가 종종 게재되고 있다. 부정확한 보도로 한호관계와 호주 동포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고직순 한국일보 호주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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