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의 학습효과는 대단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그 끝을 헤아리기 힘든 국면이 전개되면서, 재계엔 '머뭇거리다가는 제2의 웅진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웅진 효과는 대기업들의 정리, 합병, 매각 바람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기 위기를 견딜 수 있는 몸집과 재무구조를 갖추기 위해 더 이상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하고, 중복계열사들은 합병시키며, 필요하다면 핵심계열사도 매각하는 분위기다.
12일 핵심 계열사에 대한 매각방침을 발표한 STX그룹과 동양그룹도 주된 목적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내수침체 상황을 맞아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것이다.
STX그룹이 보유지분 전량(35.19%)을 매각키로 선언한 STX팬오션은 사실 그룹의 중심적 계열사다. 국내 3위의 대형선사인데다, 2008년 시장이 한창 좋을 때는 6,700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냈을 만큼 그룹 내 확실한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해운경기가 곤두박질쳤고, 특히 벌크선 비중이 80%를 넘는 STX팬오션으로선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룹 내 일각에선 "경기만 살아나면 해운이 가장 먼저 일어선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강덕수 그룹 회장은 "해운을 정리하고 차라리 조선과 에너지 쪽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해운은 조선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인데 결국 한 축을 떼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전례가 없는 구조조정"이라고 말했다. STX는 그룹의 자랑거리였던 유럽 조선 자회사(STX OSV)도 처분키로 한 상태이며, STX에너지 지분 43.1%를 일본 금융회사 오릭스에 팔아 3,600억원의 현금도 마련했다.
동양그룹도 마찬가지다. 레미콘사업을 위주로 한 건재부문과 동양매직으로 대표되는 가전부문은 지주사인 ㈜동양의 5개 자회사 가운데 현금창출능력이 가장 좋은 계열사로 알려졌다. 올해 1~3분기 두 회사의 누적 영업이익은 각각 398억원, 134억원으로 ㈜동양의 전체 이익(507억원)보다 많았다. 특히 동양매직은 그룹 내에서 소비자 인지도가 가장 높은 브랜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그룹 역시 핵심적인 두 사업을 처분키로 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돈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미래를 내다봤을 때 수익성이 없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며 "그룹의 모태인 시멘트부문과 강원도 삼척에 대단위 발전단지 건설을 추진 중인 에너지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이익이 나는 두 부문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진행돼 왔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 소유의 베트남 호찌민 주상복합건물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부산 주상복합쇼핑몰 '센트럴스퀘어', 대우인터내셔널이 대주주인 창원 '대우백화점' 등 비주력 사업(유통)을 일괄 매각하기 위해 롯데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포스코는 현재 10여개 계열사의 매각작업을 진행 중이다. 동국제강도 노후 설비인 포항제강소 1후판공장을 폐쇄하고 동남아 철강사를 상대로 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계열사간 통합을 통해 군살을 빼는 작업도 한창이다. 롯데는 롯데쇼핑과 롯데미도파를 합병한데 이어 최근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과 케이피케미칼의 합병을 완료했다. STX는 지난 10월 STX메탈과 STX중공업의 합병을 결정했고, 한화케미칼도 최근 탄소나노튜브를 개발하는 한화나노텍을 흡수합병하는 등 중복투자를 줄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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