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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2월 13일] 친일과 친북이 만들어낸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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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2월 13일] 친일과 친북이 만들어낸민주주의?

입력
2012.1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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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와 친북파, 민주주의와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다. 파시즘적 제국주의 체제에 부역한 이들과, 스탈린주의를 넘어 전근대 왕조의 수준으로 회귀한 체제에 민족적 환상을 느끼는 이들은 신념적 민주주의와 한참 거리가 멀 것이다.

하지만 서로를 '(미래에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정신적) 북한인'과 '(과거에 나라를 팔아먹은 정신적) 일본인'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두 정파의 언어를 보면 민주주의나 자유나 인권 따위는 한국 사회에 아직 사치란 느낌을 자주 받는다. 가령 새누리당 지지자에게,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이라곤 북한 사람, 국정원 직원, 경찰간부 정도며 나머지 한국 사람은 밥이나 먹여주면 정부에 불평해선 안 되는 존재다. 또한 민주통합당 지지자는 '독재세력'에 맞서는 대동단결의 환상을 수시로 다른 소수 정파에 강요한다.

그래서 전두환이 대통령일 때 태어난 나는 이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내가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기성세대가 자랑하는 경제성장보다도 훨씬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국인들의 인권감각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민주적인 사회보다는 싱가포르처럼 밥만 먹여주는 권위주의 체제에 훨씬 적합해 보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처럼 두발단속을 한다거나 전두환처럼 군대가 총을 쏴서 민간인을 죽이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정권이 민간인에 대해 사찰을 하든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을 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하나의 가설은 이 두 세력이 서로를 죽일 듯이 욕하는 그 '친일'과 '친북'이란 속성이 기적적으로 겹쳐서 우리의 민주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의 독재자들이 친일파를 대략 청산했다면, 박정희가 만주군 출신이 아니라 장준하처럼 광복군 출신이었다면, 한국의 반독재투쟁의 동력이 현실의 역사에서처럼 강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해서 북한 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한 어떤 운동권들은 독재를 비판하기는커녕 체제의 수호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필 독재자가 '다카키 마사오'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성으로 독재에 반대한 이들을 북한이 후원했기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박정희가 쿠데타 일으키고 사람 두들겨 패고 죽인 것보다 '다카키 마사오'였단게 훨씬 논란을 일으키는 세상에선 이런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아마 언젠가 북한의 왕조가 무너지고 문서들이 해금된다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미친 영향력도 모두 밝혀질 것이다. 어쩌면 극우파들의 주장대로 한국의 독재자들에 대해 나돌던 몇 가지 미심쩍은 가설(가령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하면서 오르가즘을 느꼈다는 에피소드 같은)들은 북한 쪽에서 만들어낸 '공작'의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독재 투쟁을 하는 민주화 운동 세력에 친북파가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부 비판하는 이들은 모두 친북파'라는 극우파들의 편견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바람대로 한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국 사회는 절대로 북한이 통치할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

가령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 군부쿠데타를 성공시킨다 하더라도 그의 '정권'은 얼마가지 못할 것이다. 설령 북한이 기적적으로 군사력으로 우리 사회를 접수한다 하더라도 그 '통치'는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이를 갈며 싫어하는 '일베'의 친구들이 아무리 '민주화'를 조롱하더라도, 이 문화에서 자라난 그들은 군부독재도 공산왕조도 견뎌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이 겹쳐서 생겨난 민주주의 체제라도 그 자유를 맛본 이들은 다시는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민주주의가 좋다는 건 민주주의를 경험해 봐야만이 알 수 있는 종류의 진실이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그녀가 70년대로까지 돌아가려 한다면 '민주화'를 조롱하던 그 청년들이 분개할 것이다. '87년 체제' 이후 양정파가 가장 강하게 결집하는 이 극한대립의 대선을 보며 내가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은 그것 밖에 없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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