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징 없는 18대 대선 후보 TV토론이 도마에 올랐다. 3차례 토론 중 2차례 진행됐으나, 유권자들에게 실망만 안겨줬다는 평가다. 후보들의 치열한 정책 설전은 찾아보기 힘들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정책 나열과 지루한 대화식 토론이 지배한 탓이다. 여기에 지지율이 0.5% 내외인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상식 밖 언행은 TV토론의 수준을 더욱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이 후보는 1차 토론때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TV토론에서 제일 먼저 갖춰야 할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100% 실종된 순간이었다. 1% 지지율도 안 되는 후보가 40% 이상 지지율 후보들과 한자리에 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이를 계기로 TV토론 참가 후보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근 'TV토론 참가기준 강화'를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지지율 15% 이상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자는 게 골자다.
전문가들 시각도 비슷하다. 인신공격성 발언에 대해 보다 엄격한 토론 룰을 적용하는 것 외에도 반론, 재반론 기회 부여 등 TV토론 형식의 전반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학부 교수는 "토론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미국처럼 청중의 답변에 후보자들이 응답하는 '타운 홀 토론'이나 사회자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토론 규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호 자유토론형식으로 반론과 재반론을 이어가야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의 자질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60초 묻고 90초 대답… 대본 읽기 수준… 자유토론으로 자질·진면목 판단 가능케"
●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형식적 공정성에만 치우쳐 후보자 검증 어렵게 해
사회는 주제별로 전문가가
지난 1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의 주인공은 단연 이정희 후보였다. 이정희 후보의 말솜씨에 유력한 대선 후보들은 뒷전으로 밀려 났다. 그래서인가? 이정희 후보를 토론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소위 '이정희 방지법'을 새누리당에서 발의하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정희 후보 덕분에 "속이 시원하다"는 국민들도 분명 있었을 거다. 다른 한편 대선후보토론회를 보면서, 왠지 모를 황당함을 느꼈을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의 진면목을 보고자 했던 많은 국민들은 정작 이 후보의 진면목을 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대선후보토론회가 어정쩡하게 끝났다. 2차 토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재연됐다. 대선후보토론회제도 개선논의가 분분한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군소후보를 토론회에 참여시켰다는 데 있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오히려 딴 데 있다.
사실 이번 대선후보토론회에서 이정희 후보의 활약은 어느 정도 예견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와 달리 이정희 후보는 자기 스스로가 당당히 고백하였듯이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출마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 후보는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음껏 쏟아 낼 수 있었다. 혹여 실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두 유력후보들과 사뭇 달랐다. 표현도 직설적이며 토론회 규칙을 대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하물며 '남쪽 정부'라는 표현도 사용할 수 있었다. 과연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가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각 진형의 캠프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대선후보토론회 규칙으로 되돌아 가보자. 대선후보토론회 참가자격은 군소후보인지 유력후보인지를 떠나서, 대선후보로 국한된다. 대선후보란,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낙선시키기 위해서' 또는 '적극 지지하기 위해서', 급기야 '사적인 억울함을 전 국민에게 하소연하고 싶어서' 대선후보로 등록한 경우라면, 그는 대선 후보라기보다는 특정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선거운동원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들은 대선후보토론회가 아니라 특정 후보 연설회에 나서야 했다. 대선후보토론회는 '대선후보들'과 '그 지지자들' 또는 '반대자들'이 한데 뒤엉켜 논쟁하는 곳은 아니다. 대선후보토론회는 100분 토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여 지금처럼 대선후보토론회가 그저 형식적인 공정성만을 중시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1분 묻고, 1분 30초 대답하고, 재반론도 없이 끝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한글을 겨우 깨친 초등학생들이 연극을 하면서 대사를 암기 못해 대본을 일일이 읽어 내리는 것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차라리 사회자가 하나의 세부 논쟁거리를 던져주고, 상호 자유토론형식을 취하면 어떨까? 자유롭게 서로 반론과 재반론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유권자들은 대선후보자들의 자질과 국정현안에 대한 이해 수준을 효과적으?가늠하게 될 것이다. 그게 말싸움으로 번지더라도 괜찮다. 그게 후보자들의 '맨 얼굴'이고, 유권자들은 그 '맨 얼굴'도 봐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 대선후보토론회를 국방, 외교 등 분야별로 주제를 정해 진행되도록 했으면 한다. 또 그 토론회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맡도록 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만 토론 내용에 대한 컨트롤이 가능하고, 각 후보자들에게 공평한 반론과 재반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후보자에게는 사회자로서 경고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처럼 그저 "시간이 넘었다"는 사회자의 말만 들리는 토론회는 시청자들을 짜증나게 만들 뿐이다.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에 대하여 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듣게 된다. 대선후보토론회는 우리 국민이 대선 후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그래서 너무나 '소중한' 기회다. 그렇다면 국민들로 하여금 대선후보의 '살아 있는' 진면목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검증의 무대 아닌 입씨름의 장 변질… 참여 후보 엄격 제한·사회자 권한 강화"
● 김형준 명지대 인문학부 교수
재질문·재반론 허용 등 토론 운영방식 개선부터
유권자 출연·질의 고려할 만
이번 대통령 선거의 남은 변수는 TV 토론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경제 민주화, 일자리 창출 등을 주제로 실시된 10일 2차 토론에서도 후보들은 설전을 거듭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국 대선에서 TV 토론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97년 대선 때부터였다. 대선 직전 치욕적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았던 시기에 정치권이 구조 조정 차원에서 조직과 동원 선거의 악순환을 끊어 내기 위한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처음 도입된 TV 토론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한국 갤럽이 선거사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2명중 1명 이상(51.6%)이 지지후보를 결정하는데 가장 많이 참고한 것으로 'TV 토론'이라고 응답했다. 그런데 TV 토론이 선거가 거듭될수록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TV 토론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과 능력 검증은 사라지고 선동, 인신 공격성 발언, 동문서답이 판을 치며 입씨름의 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TV 토론을 통해 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토론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1차 질문만 받고 재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기계적 상호 토론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일대 일 질문, 반론, 재질문, 재반론 등 구애됨이 없이 폭넓게 토론하는 형식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후보자가 각 분야의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상대 후보의 공약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후보자 선정 규정의 개선이다. 공직선거법 82조 2항에 제시된 기준에 따라 지지율이 1%도 되지 않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토론에 참여했다. 그런데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이 후보의 무례하고 거칠며 균형 잃은 일방적 주장으로 토론회가 엉망이 되었다. 심지어 이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고 나왔다"는 막말까지 했다. 분명 TV 토론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토론에 참여하는 후보자의 숫자이다. 일부에서는 '이정희 방지법'이라고 부당함을 지적할지 모르지만 토론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자로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청중의 답변에 후보자들이 응답하는 '타운 홀'(town hall) 미팅 형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기관이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 유권자들을 선정해 토론회에 나와 직접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사회자도 별도의 질문을 후보에게 던질 수 있다.
1960년 대선에서 TV 토론을 도입한 미국은 1992년 대선부터 이런 '타운 홀 토론'을 실시했다. 이 방식은 대선후보 토론자들이 청중도 없이 세트장에서 밋밋하게 카메라만 바라보며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생활하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질문하기 때문에 내용이 피부에 와 닿는다. 또한,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이 직접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얼렁뚱땅 피해 가기가 쉽지 않다.
넷째, 사회자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대선 TV 토론에서는 사회자가 주제와 상관없는 말을 하거나 다른 후보의 발언에 끼어들어도 이를 제재하지 못한다. 기계적 공평성에만 신경 쓰느라고 내용에 대해 상대가 사실과 다르게 말하거나 잘못 말할 경우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다. 이제 규칙 위반에 대한 제재를 담은 'TV토론 운영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후보자가 TV 토론 중 규정을 위반하면 사회자가 경고를 주고, 후보자가 일정 횟수 이상의 경고를 받을 경우, 화면에 이 사실을 밝히며, 위반한 후보자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강력한 뗑〉?필요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품격 있는 TV 토론이 되기 위해 이런 제도적 개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TV 토론 참여자의 성숙한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대화와 설득을 파괴하려고 작정한 후보가 존재하는 한 국민이 원하는 TV 토론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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